분노에 마음을 뺏기지 마세요

빡빡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늙고 싶지 않으니까요

by 나비


세수를 하고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를 때,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등등. 몰두까지는 필요치 않은 소소한 행동들을 하고 있을 때 아무래도 나의 뇌는 몹시 심심한가보다. 과거의 이미 지난,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지난 불쾌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생각하면 나는 괴롭기만 할 뿐인데 그 생각이 지금 왜 나는걸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러한가? 그런 사람 있겠지? 어린시절에도 그랬다. 친구들이랑 다퉜을 때 특히 내가 일방적으로 졌다. 라는 기분이 들 때는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일이 계속 생각나고, 그 시간에 멈춰 있어 즐거울 법한 일을 해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이런 내가 어른이 됐으니 좀 달라졌을까.

다행히 최근, 삶에 관하여 깊은 성찰을 한 뒤로는 이런 불쾌한 일이 생길 일도 극히 적어지고, 있더라도 오랜 시간 끌지 않고 벗어나게 되었다. 허나, 이 깊은 성찰 전에 있었던 일이 요새도 왕왕 떠올라, 생각하면? 아, 또 열받네;;


<처음보는 타인의 지나친 분노를 마주했을 때>

1. 한창 동네 도서관에 다닐 때였다. 처음에는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도서관이 독서실처럼 좀 변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어나니 자리가 부족했나보다.

책장 사이에서 종종 전화 통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청 큰 소리로 통화하진 않더라도 별 중요하지 않은 통화를 오래 하는 사람들은 나도 별로였다. 어느 날 책을 빌리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를 하며 바로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빌리고 나가려는 중에 데스크에 앉아 있던 남자 직원이 내게 큰 소리를 쳤다. "도서관에서 전화하지 마세요!" 정말 큰 고함소리였다. 그 사람의 큰 목소리에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했다. 그때 나이든 여 직원분이 내게 다가와서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 이미 전화기를 내려놓고 무인대여기를 이용해 책을 빌리러 하고 있던 중이다. 나도 좀 짜증이 나서 끊었다고 하고 그 남자를 쳐다봤더니 분이 안 풀려 씩씩대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드라마에서 도서관 장면이 나오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내가 참 좋아하던 장소였는데 그런 식으로 기억되다니 속상하다. 그 일이 있고 한참이 지난 후에 도서관 문에 전화 통화 금지라는 안내문구를 발견했다. 독서실이 아닌 도서관에서 전화 통화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쩌면 상식일 수도 있는데 통화하는 사람을 왕왕 발견했고 한 번도 제지 당한 걸 본 적도 없어서 몰랐다.

그 직원 입장에서는 맞는 말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태도는 쌓인 분노를 내게 표출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직원은 좀 더 정중하게 내게 말했었야했고 나 역시 그런 부탁을 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이후에도 지하철에서 무례하게 악을 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조용하고 사람 많은 데서 소리지르는 사람이 이해도 안 되고 맞닥뜨렸을 때 어떤 대응을 해야하는지 그저 깜깜할 뿐이었다.


깊은 성찰을 한 뒤로는 그런 사람에게 같은 식의 분노로 대응하지 않은 건 참 잘한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을 안한다? 무시한다? 그건 또 나름 위험하다. 계속 그 일을 곱씹는 내 성격 때문에. 그렇게 소리지르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상대의 눈을 쳐다본다. 그건 잘 할 수 있다. 한참 그 사람 눈을 쳐다보는 거다. 그리고 속으로 말을 거는거다. "저도 잘못한 게 있지만 그렇게 소리지를 정도로 화내실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요새 많이 힘드신가봐요." 그렇게 말을 걸어주는 거다. 그 사람이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상관없다. 내일 이런 일을 겪는다면 난 꼭 그렇게 응대할 것이다.


<작지만 선명한 불친절을 경험했을 때>

종종 편의점, 제과점, 음식점 등등 다양한 장소에서 불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B. 유튜브에 마카롱 가게 영상이 나왔는데 알고 보니 우리집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아닌가. 엄마랑 산책 겸 마카롱을 사러 가자고 했다. 근데 걸어갈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엄마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걷는 게 힘든데 그런 엄마와 의도치 않게 한참을 걸어서 마카롱 가게에 도착했다. 영상에서는 사장님 혼자 일하는 줄 알았는데 안에 두 명이나 직원이 있었다. 10개가 훨씬 넘는 마카롱을 주문했다. 유튜브 보고 왔다는 소리는 안했지만 속으로는 되게 친근한 매장으로 느껴졌었다. 사장님은 포장봉투에 마카롱을 건네며 고맙습니다 대신 "안녕히가세요."라고 했다. 엄마도 아직 의자에 앉아있는데 꽤 성급한 작별 인사였다. 엄마에게 따로 줄 마카롱을 담으려고 작은 포장봉투를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고 명함을 준다. "아, 엄마랑 나눠서 가져가려구요. 봉투 하나만 더 주세요." 그렇게 자리에 앉아 마카롱을 담고 나왔다. 매장에서 계산하고 나올 때까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나가는데 인사도 안 하네." 사람을 잘 이해하고 화도 잘 안내는 성정의 엄마에게서 들은 뜻밖의 말이었다. 괜스리 미안해서 "아까 인사하기는 했어.(넘 빨리해서 그렇지)"라고 했다. 그렇게 돌아나온 그 마카롱 가게는 이후 다시는 찾지 않았지만, 이 또한 똑같다. 도서관이 그렇게 기억되는 것처럼. 유튜브에 자영업하는 분의 영상을 볼 때면, '혹시 찾아가면 실망하게 될까? 저 사람도 영상에서만 저렇게 친절한걸까? 아니야. 저 사람은 정말 친절한 것 같아'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암튼 그 이후로는 좋아하던 마카롱 영상을 더이상 보지 않는다.


B-1. 출근하는 길 제과점에서 예쁜 조각케익을 하나 샀다. 20대로 보이는 여직원은 내가 손으로 건넨 카드들을 직접 단말기에 꽂으라고 했다. 포인트 카드는요? 하고 묻자 아, 하더니 바닥에 센싱한 포인트 카드를 툭 내려놓았다. 상자에 케익을 담아 건네면서 "안녕히가세요."라고 했다. 내 손이 케익 상자에 닿기도 전이었다. 내 뒤로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는데 마치 빨리 꺼져버리라는 차가운 마음이 말투에 담겨있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으려고 일부러 방문한 곳이었기에 더 차갑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후 또 케익을 사러 갔다. 또 그 여자분에게 계산을 받았다. 영수증 드릴까요? 해서 아뇨. 괜찮아요. 라고 하자마자 눈앞에서 영수증을 좍하고 찢는다. 맞다. 영수증은 찢어 버리는 게 맞는데 굳이 내 얼굴 앞에서 그럴 필요가 있을까?



B, B-1 일들이야 정말 생활 속에 너무 흔하게 겪는 일이다. 아침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하루 종일 그 일을 생각하는 그런 일도 아니다. 내가 잘못한 일도 없지만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할만한 일도 없다. 하지만,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이 사실.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좀 더 친절하시면 좋겠어요. 제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요. 얘기하면 좋을까? 내가 너무 예민한가? 자책하는 게 옳을까? 아니, 그저 "저 사람은 지금 여유가 없는 상태구나." 생각하면 그만이다. 마카롱을 많이 팔아도 마음에 여유가 없구나. 제과점에서 일하지만 사람을 응대하는 게 싫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에 여유가 없구나. 안쓰럽게 생각하면 족하다.

아주 잠깐이라도, 아주 작더라도 한 번 마음에 들어온 불쾌한 마음은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쉽게 쌓인다. 쌓이는 속도도 아주 빠르다. 그러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조용한 지하철에서 옆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이상하고, 이해 안 되는 사람으로 늙어갈 수 있다. 집, 직장, 가게, 그 어디든 내 얼굴을 보고 웃는 사람보다 쌩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인생길을 걸으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소중한 도움, 시기적절한 배려를 놓치지 않으려면 제 마음을 제때 들여다보고 돌봐줘야 한다. 마음의 여유는 나를 살리고 너를 구원하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