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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Dec 14. 2022

가을을 맛보다.

살아온 날의 단상


 가을이 차가운 바람 따라 가버릴 것 같아 가을을 맛보러 갔다. 꽃이 좋아 금이산 산기슭에 터를 잡고 정원을 가꾸고 살고 있는 지인의 정원은 누구든지 지나는 길손이 꽃향기 맡고 들어오라고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계신다.


 황금빛으로 가을을 맞는 벼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첫돌맞이 아기의 노란 저고리 같은 국화꽃은 나를 기다리고, 나비를 닮아 나비 바늘꽃이라 부르기도 하는 가우라 꽃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바람 따라 모두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한쪽 구석에 초연히 피어있는 에키네시아 꽃은 곧 비상할 자태로 나를  사로잡았다.


 어릴 적 까맣고 동그란 씨앗을 돌멩이로 콩콩 찧어 분처럼 하얗게 바르고 소꿉장난하던 분꽃도 피어 있고,

족두리꽃은 예쁜 아가 머리 위에,  

덜꿩나무의 빨간 열매는 실에 꿰어 목걸이를, 

아직도 피어있는 봉숭아꽃은 어릴 적 손톱에 빨갛게 물들여 주시던 할머니를 기억하게 해 주었고,

산기슭에 눈의 결정체처럼 해맑게 피어난 구절초 꽃은 마치 가을에  내린 눈꽃 같다.


 보석 같은 단추 국화꽃은 내 어머니 반짇고리 속에 쏘옥 넣어두고 싶고,

꽈리릭~불던 꽈리는 웃음 짓게 하고,

그리움이 담뿍 담긴 쑥부쟁이의 꽃 향기를 맡으며 가을의 시간 속에 조용히 머물러 보았다.


꽃길을 지나 뒷 산으로 올라가니  연리지 소나무 2그루가 기다렸다는 듯이 기지개를 켠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되어

마주 보는 사랑을 하고, 

나이 들어 삶이 익어가면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반자가 된다.

연리지처럼


 지인이 즉석에서 맨드라미 꽃을 따다 페퍼민트 잎 몇 장 넣고 뜨거운 물을 넣으니 진한 다홍빛으로 우러났다.

한 모금 마셔보니  음 ~가을  맛이다.


가을이 그곳에 머물렀다.

가을이 머문 곳에 꽃이 있었다.

사람들도 함께 그곳에 있었다.

모두 모두 꽃이었다.

모두 모두 가을이었다.

             

    덜꿩나무와 연리지 소나무  by김기섭

                          맨드라미 꽃차 by김기섭


꼭 한 달 전에 써 놓은 글이다.

아직 가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제 눈이 펑펑 내렸다.

아침을 여니 모두 눈 세상이다.

이젠 정말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할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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