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작가의 글을 읽고
시간은 늘 똑같이 주어진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연말에 시상식을 보고 있으면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타임이 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아주 활기차게 맞이하기에는 부족한 환경이다.
배불리 먹고 누워서 보거나 소파에 앉아서 무기력하게 또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해가 바뀌는 시점에서의 보신각에 있는 사람들과 그 장면을 안방에서 관람하는 처지의 차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늘 비슷하지만, 종소리를 듣고 자야만 될 것 같은 기분과 쉽게 잠들지 못하는 기분이 교차한다.
몸은 마지막 날이라 지쳐있다.
무기력한 몸으로 새해를 맞는다.
이런 반복을 수십 년을 해왔다.
정동진으로 해를 보러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한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조금은 고요한 시간이 주어져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의 시간을 원하는 사람은 보신각으로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집에서 자는 것이다.
실제로 무기력한 마음과 몸은 매일 반복된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도 하루에도 몇 번씩 컨디션이 뒤바뀐다.
반백을 넘게 살아오고 있는 벽두에는 누구나 마음가짐이 새로워지려고 한다.
올해는 생각한 것이 성격을 조금 더 활발하게 고쳐볼까 생각했다.
I에서 E로 말이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주도적 삶이다.
끌려가는 것보다 끌어보기 위한 몸부림이 샘솟고 있었지만 표출하지 않았다.
외침을 하다 보면 어딘가에 부딪혀서 흡수하는 현자가 분명히 있으리라 믿고 있다.
매번 이맘때쯤이면 나오는 결심과 다짐은 사흘을 못 넘기고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나라는 인간의 의지는 정말로 이렇게 보이지도 않는 미세먼지 같은 것인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고 노를 젓지 않았더니 퇴보하고 말았다.
무엇이 부족한지 잘 모르고 내가 나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분노는 이미 사라졌고, 무기력만 남았다.
걸음걸이는 느려 터져서 항상 추월을 당한다.
누구를 따라잡아 걸어본 적이 거의 없다.
내 눈동자와 걸음걸이가 빨라질 때는 술 약속이 있거나 친구랑 놀 때뿐이다.
어릴 때부터 바보상자와 너무 친하게 지낸 탓에 이렇게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은 그런 마음은 늘 지니고 있는데 꾸준하게 인간관계나 성취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꾸준히 하는 것은 술과 담배이다.
일 년 동안 정말 무기력하지 않은 시간은 무엇을 먹을 때였다.
늘 기대하는 작심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다.
어두운 터널의 끝은 과연 언제일지 궁금하다.
겨울은 춥고 마음을 시리게 한다.
봄이라도 와야 그제야 기분이 좀 풀린다.
나만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나를 괴롭히지만, 그것도 오랜 시간 가지 않는다.
길어야 몇 분의 고민을 하고 까맣게 잊어버린다.
나의 무기력한 의지와 느려빠진 걸음으로 오늘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낸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누구한테나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지는 않는다.
건강을 챙기고 나를 위해서 조금만 더 약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되지 않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미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들은 처음부터 신이 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힘이 나고 재미있다.
저자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의사이다.
요즘 들어 부쩍 무기력에 빠진 나에게 구원이 책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을 읽었다.
인간은 정말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부러워서도 그렇고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을 때 그런 마음이 든다.
책에서 19세기의 악덕을 언급한다.
지난날의 악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작가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언급한 악덕은 권위주의가 첫 번째로 나온다.
즉 맹목적인 복종의 요구이다.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악덕 중의 악덕이다.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착취와 인종차별, 탐욕과 축재가 대표적이다.
과거의 악덕을 지금도 되풀이하는데 무기력쯤이야 되풀이할 만한다.
인간의 끝없는 인생의 물음은 정답이 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무력감과 권태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것마저도 즐기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책에서 권태는 이런 느낌으로 얘기했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풍요롭지만 아무 기쁨도 없는 삶이 모래처럼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느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느낌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느꼈던 느낌이다.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물음표이지만 인생의 무의미함은 인간이 사물로 변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이마누엘 칸트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인간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한에서 서로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그 어떤 인간도 타인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계몽주의 철학과 인문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의 의미이다.’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이 얕기에 인문학 서적을 읽어도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자기화가 힘든 부분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 인지하고 깨닫는 순간이 도래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은 소속감에 배제되었을 때 더욱 파도처럼 밀려 다가온다. 책에서는 반드시 타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것을 우리는 소속감, 팀워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실상은 자신과 혼자 있을 수 없는 무능력, 자신이나 이웃의 은둔을 참지 못하는 무능력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무능력을 인정한다.
나이가 어릴 때는 부단히 소속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에게 질문을 해보았을 때 부단히 끼려고 했던 과거와 그렇지 않게 살았을 때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차피 두드러지지 않고 저평가되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
저평가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사람일 것이다.
본인의 뛰어남을 홍보라는 측면에서 잘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굳이 얘기하기 귀찮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두 번째 장은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말한다.
정말 끝도 없는 질문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책에서 파스칼의 말을 인용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의 생각은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 질문해 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하는 질문이다.
그 대답을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 본질적 속성은 '인간의 본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이미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원칙일 뿐 아니라 능력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 인생인데 그렇게 살기가 쉽지는 않다.
인간이 가장 갈구하는 것은 자유일 것이다.
자유는 가장 위대한 상태이다.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무의미하다.
삶의 자유는 누구도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책에서 자유는 인격의 실현이고 우리의 삶은 초월성에 도달할 때,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르시시스트처럼 거울 속의 자신만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자신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이기주의를 벗어나 타인의 관점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을 때 조금 더 우리는 인생의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한 에너지가 삶을 인도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까운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이다.
의식하건 안 하건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으며,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고 한다.
현대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정말로 스스로 원하는 것인지를 고민할 시간을 내지 않는다. 나다운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역시나 주도적인 삶이 이 책의 주제이자 핵심이다.
누구도 주도적인 삶을 지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고 행동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책에서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시장에 내다 판다고 말한다.
원래의 사고, 감정, 의지의 행위가 가짜 행위로 대체되면 결국 가짜 자아가 원래의 자아를 대체하게 된다.
원래의 자아는 모든 정신적 활동의 진짜 장본인이다.
가짜 자아는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자아의 이름으로 연기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누구나 페르소나를 갖고 사회생활을 한다.
나의 본질을 숨긴 채 살아간다.
본연의 나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린아이밖에 없다.
현대인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있다고 한다.
부지런한 행동과 의도적 노력은 그저 깊은 무력감에 빠진 자신을 은폐하기 위한 우산에 불과하다.
보통은 자신의 소망이 있을 자리를, 타인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한 고민이 차지한다.
인정과 존중에 대한 소망도 다를 것이 없으며 다른 모든 사람의 감탄을 불러낼 만큼 자신의 재능이 뛰어난가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고민한다고 한다.
무력감 탓에 노력하고 일하고 배워봤자 타인이 정말로 인정하거나 감탄하는 것을 생산해 내지는 못한다.
그 결과 과대망상과 자신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기분 사이를 오가는 자아를 가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진짜와 허울의 차이를 얘기한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대화와 공감 능력이 요구된다.
보고 응답하고 인식하고 인식 대상을 알아보는 감각을 갖추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말해준다.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언은 이렇다.
첫 번째 조건은 감탄의 능력이다.
두 번째 조건은 집중력이다.
또 한 가지 조건은 회피하지 않고 양극성에서 나오는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기와 자아를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자기 세계의 중심으로 자기 행동의 진짜 장본인으로 경험한다.
그것이 바로 독창성이다.
독창성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나 자신에게 기원을 두는 경험이다.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사고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관련하여서도 진리 말고는 그 무엇도 추구하지 않겠다는 용기는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만 가능하다.
사고와 감정에서 자기 경험의 현실성을 확신하고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바로 나로 수렴한다.
내가 있고 타인이 있는 것이다.
나를 믿고 인생을 주도할 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오답인지는 자기 자신이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다.
남에게 의지하고 조언을 구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남이 내 인생을 살아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력으로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되풀이하지만 그것조차 나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정말 보잘것없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있더라도 한 줄기 빛은 언젠가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자기가 가진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내가 자랑스러울 날이 꼭 온다고 믿으면 된다.
우주는 나를 위해서 지금도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