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작가의 글을 읽고
아! 고래가 보고 싶다.
어마어마한 고래가 불타버렸다.
웅장한 바다의 왕이 숨을 내쉰다.
눈을 껌벅거리며 바닷물 전체를 빨아드린다.
고래가 나타났다.
고래가 사라졌다.
웅장한 고래가 극장이었다.
노파, 금복, 춘희로 이어지는 판타지 소설이다.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망각의 법칙이다.
수많은 법칙이 적용된다.
코끼리와 춘희는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게 읽었다.
곧장 끝까지 읽고 싶어도 분량이 크다.
나의 글쓰기 욕망을 꺾어버릴 만큼 힘 있는 소설이고 거대하다.
고래처럼 거대하고 위장 속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소화되지 않은 고래의 똥처럼 진가를 발휘한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까.
능력자임이 분명하다.
뜨거운 햇살이 살을 타게 한다.
네 잎클로버가 요즘에는 눈에 띈다.
예전에는 찾으려고 해도 못 찾았던 네 잎클로버가 이제는 눈에 보인다.
안 되는 것은 없다.
포기하지 않으면 뭐든 찾을 수 있다.
배경이나 인물의 묘사를 따질 능력이 없다.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어떻게 쓴 것일까.
무한한 확장이다.
사람의 인생은 시간에 따라 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기억을 끄집어낸다고 해도 세세하게 기억이 안 난다.
부럽다.
이렇게 재밌게 썼으니까, 문학상을 거머쥔 것이다.
신인상 작가가 문학상까지 받은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엄지를 치켜세울만하다.
한번 읽으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묘한 소설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것처럼 신이 난다.
변사가 영화를 맛깔나게 말하면 웃고 놀라고 운다.
여기저기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벽돌 공장 ‘평대벽와’는 개망초만 가득한 폐업한 공장이다.
시골 어디쯤 있지 않을까.
이 이야기가 사실은 아닐까.
헷갈린다.
벌을 부리는 사람. 생선 장수, 다방, 쌍둥이 자매, 칼자국인지 칼잡인지 헷갈린다.
걱정의 거대한 몸집,
장사수완이 남다른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금복, 벙어리 춘희, 별의별 사람들이 등장한다.
말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소설의 위대함을 느낀다.
적나라한 표현과 행동을 글로 표현하는 위력을 갖지 못한 보잘것없는 독자로서의 나.
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나.
다시 읽어도 재미겠다.
책 후반에 작가의 인터뷰.
영화판을 좀 기웃거렸던 작가.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는지가 궁금하다.
제작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든 것이 궁금하다.
배우고 싶다.
글을 쓰는 것을 배우고 싶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접게 했지만 쓰지 않으면 재미없고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이렇게라도 끄적여 본다.
이름 또한 명관이다.
하늘이 내린 명관의 소설 ‘고래’에 푹 빠져 있었다.
문학동네 제10회 수상작인 이 작품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글과 소재를 어디서 구하는 것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면 작가들의 무서운 수집력과 글의 재료가 되는 넘쳐나는 글의 원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수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외설이 나오고 인간이 사는 이야기가 나오고 영화의 모든 장르가 다 나온다.
꿈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썼는지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금복은 여자로서 아주 매혹적인 여성이다.
모든 남자의 아랫도리를 주체하지 못할 만큼 금복은 향기가 난다.
살냄새가 많은 남자들을 애끓게 만든다.
페로몬이라고 한다.
금복의 아버지는 저수지에서 죽었고, 금복은 모르는 남자를 따라서 어린 나이에 부부가 된다.
생선 장수인지 엿장수인지 트럭을 몰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첫 남자는 나이 많은 남자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을 거둬들인 대가를 몸으로 대신한다.
자연스럽다.
아랫도리 이야기도 금기가 아니다.
금복은 어촌에서 생선을 말려서 판다.
장사가 잘된다.
머리가 좋다.
눈에 띄는 육감적인 몸이다.
금복을 거쳐 간 남자는 내 기억으로는 이렇다.
처음 집을 떠나 만난 생선장수,
그리고 육중한 남자 걱정,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보게 해 줬던 칼자국, 그리고 또 생존을 위해서 만났던 많은 남자.
그리고 금복이 맘에 들면 금복의 남자가 된다.
충격적인 것은 금복은 여자에서 남자가 된다.
너무 예쁜 여자를 갖기 위해 클리토리스가 커져서 남자가 되었다.
금복의 벽돌은 이 세상을 건설한다.
벽돌은 먼 훗날 최고의 점토 벽돌로 인정받아 국가에 필요한 건축물에 사용된다.
묘사를 배워야 한다.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묘사를 알아야 한다.
금복의 일생은 힘들고, 고생이었지만 남자에 대한 욕망은 원 없이 풀고 갔다.
그녀는 남자를 자빠뜨리기에 충분한 미모였다.
극장을 처음으로 가게 만들어준 칼자국.
종국에는 칼자국을 자기 서방을 죽게 한 줄 알고 작살로 죽인다.
배를 쑤시고 한 바퀴 돌렸다.
금복의 듬직한 서방님인 걱정은 금복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밤일도 잘했고, 힘이 장사였다.
통나무가 굴러 떨어져도 몸으로 막을 만큼 장사였다.
걱정은 칼날과 바람난 것을 알았다.
몸을 다쳐서 예전의 몸은 아니었으니 밤일도 못 하는 남자가 되었다.
칼자국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결국에는 늙은 여자였으니 그 얼마나 한탄할 일인가.
일본 접대녀의 요구대로 칼날은 우두머리가 돼서야 그녀를 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상처를 받았던 칼날은 금복을 더욱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루지기, 변강쇠, 옹녀를 연상케 하는 행위의 장면이 펼쳐진다.
인간의 성욕은 금기가 아니다.
누구나 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는다.
감추지 않는다.
당연한 본성의 법칙이다.
수많은 법칙이 나온다.
필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보면 조금 나아질 것이다.
눈은 퀭하니 쑥 들어간 작은 체구에 뿔테를 아래로 내려서 답답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눈에서는 총명함이 서려 있었다.
다방에서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에스프레소를 시킨다.
이렇게 쓰다 보면 되겠지. 어렵다.
인물과 서사를 끌어내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문창과를 가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
늘 말하지만, 깊이가 없다.
어릴 적 TV를 많이 봐서 바보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 좀 하고 살아야겠다.
아직은 챗GPT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
궁금한 것은 물어볼 요량은 있다.
코끼리 점보는 박제가 된다.
모든 등장인물이 다 죽는다.
밀림에서 동물에게 키워진 늑대소년처럼 춘희는 야생에서 산다.
말도 못 한다.
그리고 감옥을 간다.
혼자서 벽돌을 만든다.
힘센 소년이 나중에 아버지가 된다.
혼자서 출산한다.
아이도 죽고 춘희도 죽는다.
애꾸눈인지 노파인지 국밥집은 잘 정리가 안 된다.
쌍둥이 자매도 누가 언니고 동생인지 섞여 있다.
제대로 읽은 것은 맞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천장에서 돈이 와르르 떨어진다.
금복은 그 돈으로 벽돌 공장을 짓는다.
평대로 몰려드는 사람들.
인부들의 거친 말과 교도소 수감자들의 폭력이 난무한다.
남녀 간의 섹스는 기본 장착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작이다.
상상의 나래를 무한으로 펼친다.
이러다가 우주까지 가도 상관없다.
평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겪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훌륭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신경 쓰지 말자.
해도 해도 화수분처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들은 신이 분명하다.
이런 말 저런 말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생각이 안 나서 못 쓰겠다.
경험하지 않았는데, 들은 것만으로 쓴다.
적어놓은 것을 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백과사전이 있다.
나는 무엇이 있지.
만화인지 소설인지 영화인지 끝나지 않아도 될 소설이다.
관찰이 중요하다.
지하 복도를 걸어가서 좌회전하는데 걸레받이가 유난히 보였다.
엘리베이터에 비치는 내 모습을 그냥 본다.
비슷한 시간에 화장실을 간다.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하고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가는지 알고 싶다.
여자 감옥이 있고 공장이 있다.
비린내 나는 어촌이 있다.
산골이 있다.
기차가 지나간다.
지나가는 삼륜차가 사륜차가 되어가는 시간 속에 장군의 시대가 있다.
결코 소설 속 이야기는 산으로 가지 않는다.
3대에 걸친 여자의 이야기이다.
굴곡진 인생이란 말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흥행의 요소는 다 갖고 있다.
주인공으로 누구를 섭외할지 모르겠다.
여자는 배우 이정현 정도면 충분히 해낼 것 같다.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1인 3역은 춘희의 거대한 몸 때문에 안 될 것 같다.
얼마나 뿌듯할까.
작품이 나오고 수상을 하고 인터뷰하고 돈이 들어오면 좋아 미칠 것 같다.
이런 재미와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
흐느적대지 않고 법칙으로 끊어주고 욕망을 터뜨리고 거침이 없다.
고래의 모습으로 탄생한 극장은 소름 끼쳤고, 춘희의 그림 또한 충격이었다.
작가의 그림인가.
지천에 깔린 게 개망초이다.
먹는 것보다는 육체의 욕망이 생각이 많이 난다.
산과 바다가 있고 트럭과 꿀벌이 있다.
곰과 싸워지지 않는 춘희가 있다.
진흙 속에서 명품 벽돌이 나온다.
돈을 버는 수단이 생선, 국밥, 커피, 벽돌이다. 서부영화가 흘러나온다.
극장은 불타고 만다.
큰 화재로 모두 죽어버린다.
벽돌에 새겨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욕망인가. 인생인가.
남녀노소, 꿀벌부터 맹수까지, 그중에 거대한 고래와 코끼리, 설명이 안 되는 무지막지한 이야기는 독자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미약한 글솜씨는 이 작품 앞에서는 펜을 놓아야 한다.
아니 키보드를 놔야 한다.
게임이 안 되는 게임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렇게 키보드를 치는 나는 바보인가.
언젠가 유명한 작가가 되는 그날이 오면 천명관의 ‘고래’가 또 한 번의 스승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정리하지 못하는 뇌는 쓸모가 없다.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이야기는 필요가 없다.
금복의 인생은 여자의 인생이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바뀐다고 하는데 금복은 남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남자가 되었다.
훌륭한 상인이었고 공장장이었다.
극장 주인이었고 춘희의 엄마였다.
말 못 하는 벙어리 춘희는 공장을 찾아서 헤맨다.
그리고 벽돌을 혼자서 굽는다.
발견된 벽돌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벽돌을 만들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만남과 이별이 있고 귀신까지 소환한다.
이승에서 억울함을 풀어줘야 저승으로 간다.
한 맺힌 것들을 다 풀어야 간다.
백스페이스를 자꾸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쓰게 된다.
너무 생각한다고 눈치 보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그렇게 안 된다.
미쳐버릴 것 같은 나의 부족함이 자꾸만 작게 만든다.
왜 말을 못 하냐고 아니 왜 쓰지 못하냐고 적어보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이다. 논쟁에서 이겨본 적이 있는가. 그냥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살았다.
이름을 바꿔볼까.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다시 이렇게 쓰는 이유는 미련이 남아서이다.
법칙으로 말하자면 무슨 법칙이 있을까.
그냥 말 그대로 미련의 법칙이다.
수많은 법칙이 등장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법칙이다.
이 글을 올릴 텐데 부끄럽지 않은가.
그러나 그 알량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른다.
그냥 언제부터인가 써보니 좋았다.
자신감마저 장착된 느낌이라 힘을 내본다.
이런 감정까지 적어야 되는가.
불필요한 것을 좀 빼야겠다.
수상작이고 두껍고 재밌다.
고래처럼 신기하고 크다.
코끼리처럼 육중하다.
꿀벌처럼 달콤하고 때론 무섭다.
벽돌처럼 따스하고 차갑다.
비린내 나지만 향기롭다.
금복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춘희처럼 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자들처럼 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현실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어디로 가는지 어지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맘먹은 대로 쓰면 된다.
누가 나오든 상관없다.
그만 백스페이스를 쓰란 말이야.
배고프다.
그리고 빨리 완성하고 담배 하나 피고 싶다.
조용한 것은 나의 창작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시끄러워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 사람은 뭐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줌도 마렵고 조급증이 난다.
이렇게 마무릴 져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내 마음이다.
누가 나를 유명한 작가라고 불러줄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