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에세이
중고 LP 책방에 갔더니 주인이 그 여자였다.
음반을 고르면서 생각이 났다.
며칠 전에 고양이를 안고 갔던 그 여자였다.
미소 띤 얼굴에 주근깨가 약간 있었지만, 미모가 눈부셨다.
그리고 목소리도 부드럽고 상냥했다.
조금 두근거렸다.
두 눈에 반했다. 소피 미르소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매장에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막힌 선곡이었다.
계산할 때 그녀의 손도 보았다.
생기 있어 보이는 길고 예쁜 손이었다.
반지는 없었다.
자꾸 양복에 희끗하게 보이는 흙탕물 자국이 신경 쓰였다.
오전에 봤던 새로운 인연이 여기 있었다.
얄밉게 웃고 있던 수타벅스의 녹색의 여신이 커피로 나를 유혹해 중고 LP 책방으로 오게 만든 건 아닌가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대충 먹었다.
오랜만에 빔프로젝터를 켰다.
캔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감상했다.
봄날에
길을 가다가 부딪혀 떨어진 책을 주워주며
손을 잡고
여름날 소나기를 피하러 들어간 우산 속에서
사랑이 싹트고
가을 저녁 무렵 바바리코트 안에서
포옹과 키스를 하며
눈 내린 겨울밤 포장마차 안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동네 불량배들의 횡포 앞에서
온몸으로 감싸주며
쓰러진 몸을 부축해 병원 수술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잡아주던 손이 다시 움직이며
시간이 흘러
아름다운 외국의 해변에서
어렴풋이 아이는 모래놀이하고
책장을 넘기는 여인의 뒷모습에 노을이 물들어가면
턴테이블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저 멀리 수평선은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