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라 작가의 글을 읽고
익숙한 이름의 작가라서 책을 꺼내 들었다.
얼굴이 기억이 안 나서 검색을 해봤더니 내가 좋아했던 기상캐스터가 맞다.
언제 이렇게 책을 냈는지 재주도 많다.
이렇게 책으로 그녀의 맨얼굴을 보게 되었다.
예쁜데 품위 있는 얼굴과 몸매가 나의 이상형 그 자체였던 그녀가 이렇게 미술에 조회가 깊은 줄 몰랐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술을 전공했다.
책 속의 그림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언제 프리선언을 했는지도 모르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녀의 삶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얘기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음에도 용기 내어 이 세상에 맨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방송가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방송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 같다.
날씨예보는 어릴 적 김동완 통보관이 기억이 난다.
검은 매직으로 지도를 그려가며 고기압, 저기압을 말하며 설명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요즘 날씨예보도 거의 매일 보는데 기상캐스터의 외모와 의상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날씨는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화창하다.
대부분 날씨가 맞지만 안 맞으면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날씨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숙명이다.
작가는 프리랜서가 되었고 이제는 어엿한 작가와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히려 기상캐스터로 목메어 있는 것보다 나는 더 멋있어 보인다.
왜 아까운 전공을 썩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얼굴에 품위가 있어 보이더니 미술을 전공했다.
이 책에서 나오는 그림에서 내가 아는 그림은 몇 개 없다.
그녀가 설명해 주는 대로 미술은 감상하고 느끼면 된다.
그림을 안다는 것도 꽤 멋있어 보인다.
이렇게 친절하게 옆에서 설명해 주는 사람과 함께 미술관에 갔으면 좋겠다.
책에 나와있는 그림에 대한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그녀의 성격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도 일반적인 기상캐스터의 시각을 껄끄러워했다.
사내에서 기자가 작가에게 날씨를 물어봐서 상세 안내를 해줬더니 하는 말이 “네가 뭘 알겠냐고 팀장한테 물어봐야지”였다.
이 같은 대우와 선배들의 결혼과 출산 이후 다시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는 환경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은 덕분에 한계를 인지하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한 미래를 준비해야만 했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사진부 활동을 했었다.
3년 동안 전시회도 했었고 전시할 때 여고생들에게 작품에 대한 설명도 해주곤 했다.
사진도 미술처럼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있다.
왜 이렇게 찍었는지,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제가 있다.
그림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안다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미술사적 학식과 견해는 전공 시절에 익히 많이 공부를 했을 것이고 주변의 관계자들이 도움을 많이 주었을 것이다.
그림 하나에 작가의 출생이며 유학을 어디서 했으며 그들의 결혼생활과 작품 활동은 어땠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는 물 만난 고기처럼 그림을 설명한다.
그래서 일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
글쓰기와 미술을 잘하는 사람은 그것을 해야 한다.
날씨 예보도 정말로 잘했지만, 지금이 더 책으로 봤을 때는 보기 좋다.
나는 작가가 긴치마와 바지를 즐겨 입었는지 몰랐다.
책에서 별명이 ‘이슬람’인 것을 알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지나치게 꽁꽁 싸매고 나와서 노출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작가의 방송 의상에 대한 조롱과 성토가 반영된 별명이었다.
내 기억 저 너머에는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였는데 아니었나 보다.
작가는 시대를 불문하고 온갖 종류의 미술을 좋아하지만 완벽한 그림 앞에서는 별 감흥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는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은 감탄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가 가장 중요한 ‘사람 냄새’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간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는 가장 인간적인 것, 살아 팔딱이는 감정,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데 인색하지 않은 마음, 신과 천사에게도 사람의 마음, 인성을 부여한 조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조토 디 본도네의 <환전상들의 추방>을 참고하기 바란다.
작가가 중학교 시절 방직공장 옆에서 살았다는 것에 친밀감을 느낀다.
나의 아버지도 방직공장을 정년퇴직하셨다. 똥물사건으로 유명했다.
초등학생 무렵의 일이었다.
그 시절 그 동네에는 공장들이 많았다.
나는 공장이 있는 선창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작가는 공장 근로자들을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를 공돌이, 공순이라 불렀던 것이 타인에 대한 무지 또는 무시가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었다고 고백했고 작가 또한 조직에서 상대적 약자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늘 절대다수에 속해 기득권을 누려왔고 비장애인, 대졸자, 이성애자, 양부모 가정의 일원으로 살면서 그 바깥에 있는 존재들을 배척하는 언어로 교육받고 사고해 왔다고 말한다. 그녀의 소개팅 일화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녀는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내 소개팅 남들의 뜨거운 연애를 열렬히 응원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심드렁한 척 가면을 쓰고 있어도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소개팅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너나 나나, 이심전심,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알 듯이 인간은 결국 외로움 앞에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들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같은 꿈을 꾸기 때문에 그렇다.
작가는 술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랬던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동행했던 부자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인상적이다.
혹시 방송 일 말고 다른 꿈은 없느냐고 물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돈 해브!”라 외쳤다.
본인 자신도 수강생들에게 “이일 말고도 다른 대안 하나쯤 만들라고” 해놓고선 말이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작가로서 서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작가는 방송일을 시작한 이후로 걸핏하면 ‘내가 남자였어도, 정규직이었어도 나한테 이랬을까’를 생각했었다고 한다.
피해의식과 다소 암담한 미래에 대한 전망, 시간이 지날수록 출몰 빈도수를 걱정했고 유독 젊은 여성에게만 마음 놓고 분노와 무례함을 표출하는 이들을 대할 때 금방 우울해졌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왜 알지 못하는지 분노한다.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은 작가다.
나도 성당을 다녔고 방직공장이 있었다.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리고 더욱 애착이 가는 건 나도 인천에서 3살 때부터 살아서 인천이 나오면 좋다.
그녀가 남자 친구를 보기 위해 인천을 헤매고 눈물과 코피를 쏟았던 이별의 고향이라서 더욱 그렇다.
작가는 그 남자를 무척이나 사랑했나 보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인천 동네를 쑤시고 다녔을까 생각하니 짠하고 정감이 간다.
사람 사는 것이 왜 이렇게 다들 비슷할까.
같은 고민과 취향. 일상의 일들이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해서 책을 읽다 보면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다 이렇게 만났다가 이렇게 이별하는 절차를 밟는다.
작가도 한 여자이고 이혼을 경험했고 인생을 거침없이 살고 있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다짐하며 때로는 후회하고 아파하면서 똑같은 인생살이와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미 다 깨달아버린 인생인 것 같지만 훗날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서 더욱더 심오한 우리들의 인생이 정말로 한낮 시원하게 내렸다 멈추는 소나기처럼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과연 내가 옳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작가의 고민은 아마도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같이 그라파 한잔하면서 인생을 논하고 싶다.
미술의 관점에서 얽혀있는 인간 세상의 관점이나 작가의 관점,
나의 관점 역시도 어떠한 정답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든 문학이든 인간의 번뇌와 인생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꾸 빠져들게 하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가 앞으로도 궁금하다.
다음 작품도 심히 기대가 된다.
책에서 작가의 소박한 여행의 꿈은 이렇다.
이탈리아 포지타노에서 타오르미나를 지나 산토리니로 다다르는 건 내 꿈의 여정 중 하나다.
죽기 전엔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계절은 여름이어야 한다.
맨살에 태양이 내리쬘 때 다리와 배, 어깨를 뜨겁게 타고 오르는 특유의 느낌이 좋다.
지중해 바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아마 그 끝없이 푸른 물결을 마주한다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남은 생에 대한 미련이 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언제 가실지 모르겠지만 만나게 되면 산토리니에서 술 한잔 합시다.
그러면 나도 한번 물어봐야겠다.
“저랑 친구 하실래요”.
친구 하는 데는 나이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나하고 정말 잘 맞을 것 같다.
그녀의 친근한 미소가 나를 반하게 만들었는데 그녀를 실제로 보고 싶다.
작가는 세 명 정도 사귀었다고 말한다.
기억에서 흐릿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내게 특별했던 연애는 세 차례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의 연애사도 그 정도인데 나하고 이렇게 비슷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책에서 소개된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작품을 보는 내내 우리의 인간의 삶을 말하는 것 같았다.
똑같은 통조림이지만 내용물은 틀리다.
왜 이 작품이 나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통조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각자의 인생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지만 겉모양은 진열된 인간의 군상이고 따고 맛보기 까지는 속 속을 알 수 없는 인생을 보는 것 같다.
나의 의미가 맞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유명한 작품은 앤디 워홀의 <오렌지 마릴린>이다.
책에서 요란하고 과장된 색채로 칠해진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식 삶을 연상시킨다.
경직된 먼로의 입매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자연스러움과 긴장, 내적 피로를 드러내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대중이 보지 못했던 먼로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앤디 워홀이 탄생시킨 마릴린의 컬러풀한 영정 사진이 어딘지 모르게 측은해 보인다면 그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있다.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 슬퍼 보이는 역작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에 하나인 마릴린 먼로.
그녀의 얼굴에 있는 점이 나는 그렇게 좋다.
왜냐하면 나는 주근깨와 점을 좋아한다.
그림의 흡입력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이 품어내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이것은 사진과는 또 다른 세계이다.
사진은 현실과 조금은 맞닿아 있지만 그림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의 감정과 사랑, 이별, 죽음 등등 미술은 또 하나의 심오한 장르임에는 틀림이 없다. 작가의 솔직한 인생관과 미술의 대한 깊이가 느껴진다.
그림 앞에 서는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방송일을 꾸준히 해왔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미술에 대한 열정은 오롯이 나의 시작이 되는 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는 망설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한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된다.
그래야 행복하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일상의 반복이 행복이고 무탈이 행복이다.
그것을 작가도 깨달았을 것이다.
나 또한 일상의 행복이 곧 행복임을 느끼면서 하루를 산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행복으로 연결된다.
행복한 일상은 비교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남과의 비교는 인생을 재미없게 만든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맨얼굴을 들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더 찬사를 보낸다.
앞으로의 영화 같은 인생 여정에 미술과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나는 언제쯤 작가처럼 맨얼굴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용기가 서지 않는다.
모든 것을 오픈할 때의 해방감과 행복을 느끼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감추려 하고 덮을수록 점점 더 자기 자신만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아름다운 날들이 오늘도 지나간다.
많이 사랑하고 살아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살자.
그녀의 맨얼굴을 볼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