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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Nov 22. 2023

나는 표현에 서투른 사람인가

냉장고를 새로 샀어요

결혼할 때 냉장고를 구입했다. 양문형이 아닌 냉장과 냉동이 위, 아래로 구분이 되어있는 그런 냉장고였다. 그러다 여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아가씨 때 쓰던 양문형 지펠 냉장고를 내가 이어받아 쓰게 되었다. 잘 쓰고 있었는데 작년쯤인가부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부터 가전제품 매장을 돌며 냉장고를 살펴봤다. 요즘 냉장고는 용량이 무척 켰다. 우리 집의 원래 있던 자리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크기였다.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남자 어른 한 뼘 반 정도나 되기 때문에 식탁 의자를 뺄 수도, 쉽게 지나다닐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냉장고가 정말 설 때까지 쓰자, 싶다가도 더운 날 갑자기 서면 새것과 바로 체인지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는 거다. 그러다 둘이 백수 비슷한 꼴이 된 시점에 본적적으로 냉장고를 보러 다녔다. 사실, 우리 집의 세탁기나 건조기, TV 등은 내가 돈을 잘 못 벌 때 산 것이다. 돈이 없을 때 물건을 구입하고 그 금액을 채우려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다.


그렇게 우리 집에 새 냉장고가 들어왔다. 냉장고와 냉동고가 따로 떨어져 설치되는, 문짝에 손을 대면 스스로 문이 짠 열리는 뭐 그런 거다. 크기도 원래 것보다 약간만 커서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새것이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손을 떼면 땡~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리는 것이 신기하다.


사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선물한 사람이 재미가 하나도 없는, 어떨 때는 서운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다. 우리 집에 들어오는 새 물건에 영혼이 있다면 나의 반응에 몹시 서운할 거다. 나는, 기쁨보다 걱정이 많은 편이어서 무조건적인 기쁨-을 표현하는 것에 몹시 서투르다. 에잇, 냉장고 열 때마다 띵 소리 나서 시끄럽다. 얼음칸이 따로 없어서 그건 따로 사야 하는구나. 계란칸도 요즘에는 없구나 막 이런다. 내가, 무심한 남편에게 익숙해진 것처럼 남편도 이런 개떡 같은 평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익숙해졌나 보다. 나의 반응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몹시 기뻐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기뻐도 너무 좋은 티를 내면 안 된다. 슬퍼도 너무 슬픈 티를 내면 안 된다.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튀지 않아야 한다. 아기가 너무 이뻐도 이뻐하는 티를 내면 안 된다. 귀할수록 무심히 대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다른 사람의 시샘을, 귀신의 시샘을 받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엄청 맛난 것을 먹고 더 먹고 싶어 하면 굶주리고 있는 북한 아이들을 떠올리라고 했다. 예쁜 옷일 입고 싶다고 하면 낭비라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배웠다. 도대체 나에게 누가 이런 것을 심어 놓은 건가.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행복해 죽을 것 같으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맞다. 기쁘면 눈치 안 보고 크게 웃고, 슬프면 다른 사람 시선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울어야 한다. 행복할 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 행복해! 하고 크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는 거였다. 


표현에 서툰 나는 지금,  냉장고 샀다고 자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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