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도장깨기 1
날씨가 제법 11월 같다. 가벼운 패딩을 꺼내 입으려고 옷장을 열었는데, 20년간의 직장생활과 2년간의 학원장의 의상들이 걸려있다. 나는 얼굴이 수더분해서 옷을 잘못 입으면 정말 집에서 밥 하다 대충 주워 입고 나온 것 같은 몰골이 된다. 그래서 승진할 때마다 자리에 걸맞은 옷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딱 떨어지는 정장도 좋고 라포형성에 좋은 부드러운 인상을 위해 그 위에 덧입을 보드라운 카디건등 점잖은 색깔들의 못들이 걸려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이런 옷을 입을 날이 또 올까 싶은 거다. 괜히 옷들을 쓸어보다가 경량 패딩을 꺼내 입었다. 가볍고 따숩다. 현관에 놓인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가방 안에는 조리복이 들어있다. 새로운 시작이다.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한 직장에서 상용직과 일용직을 구하는 것을 보았다. 우선 12월 중순까지만 할 예정이어서 일용직도 가능한지 전화문의를 했다. 이력서를 보여준 것도 아닌데 대뜸 면접을 보자고 해서 날짜를 잡았다. 면접을 보기로 한 날, 이력서 한 장 덜렁 들고 약속을 지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나의 이력서를 들여다보자니, 면접을 봐야 하는 직업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어이가 없다. 내가 지원한 것은 병원 조리실이었다. 조리를 한 이력이 없는, 오랜 시간 직장생활만 했던 내가 면접을 보는 것 자체가 바쁜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일은 아닐까 싶어 깊이 고민을 하다가 이미 약속을 정했으니 갔다.
이국장님은, 그러니까 벌써 십 년은 더 전에 상사로 모시던 분인데 일 년에 두어 번씩 통화를 하기도 하고 귤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다. 처음에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그랬다.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서류 던지기, 등짝 때리기, 소리 지르기, 등등을 시전 하는 감당하기 힘든 상사였다. 괴로운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지만 둘다 쓸데없이 정이 많아 아직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으셔서 통화를 했었다. 국장님은 아이가 아직 어려서 퇴임 후 어떤 일을 해볼까 여러 가지 고민하고, 자격증도 취득하고 했다면서 목욕탕에 취직을 했다는 거다. 직급도 높고 오래 다닌 직장이라 월급도 적지 않은데 무슨 목욕탕이냐고 했더니 청소를 좋아해서 그쪽 방향을 알아보려고 목욕탕 청소부로 취직해서 투잡을 뛰고 있다는 거다. 늘쌍 어린 자녀에게 “비굴하게 살자!”라고 세뇌시키며 조금만 비굴하면 세상 살기가 좋은데 꼿꼿하게 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 국장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그런 유연함이 어떠한 일에도 거부감 없이 도전하는 것 같았다. 감화를 받은 나는 면접을 보러 갔고, 그리고 지원했던 일용직이 아닌 상용직으로 취직이 되었다. 교복도 입어보지 못했던 나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얀 유니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