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식이 나가는 날이란다. 나는 몰랐다. 정해진 요일에 특식이 나가는지, 점심 저녁에 김치의 종류가 다르게 올라가는지 몰랐다. 그냥 총각무를 담으라고 하면 총각무를 담고 배추김치를 담으라고 하면 배추김치를 담았다. 요일과 때에 따른 메뉴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조금 더 정신을 차렸어야 했고, 조금 더 이 일에 애정과 사명감을 갖었어야 했다. 그까짓 세팅-이라는 마음이 아마도 나에게 있었나 보다. 그런 마음은 실수를 부른다.
세팅한 지 7년이 되었다는 대선배는 계속 내 이름을 불러댔다. 청소를 할 때는 문을 약간 열고 해야 된다고 벌써 여러 번 들은 말은 오늘도 한다. 문을 열려고 하면 이리 와서 직원용 국그릇 아홉 개씩 세 세트를 놓으라고 한 다. 걸래자루를 잡았던 손이라 씻고 국그릇을 세팅하려 하면 늦었다고 탓을 했다. 숟가락부터 놓으려고 하면 젓가락부터 놓으라고 했다. 이왕 같은 조가 된 김에 다 알려주겠다면서 한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했다. 내가 못 미더웠을 것이다. 병실에 나갈 반찬을 담고 뚜껑을 덮어서 쟁반에 옮기려고 하면 옮기고 나서 뚜껑을 덮으라고 했다. 오랫동안 해온 자신의 노하우이니 하라는대로 하라고 했다. 점심 식사에 식이표를 보고 병실에 맞게 이름을 써넣는데, 식사가 나가기 전에 하려고 하면 아침에 뽑은 식이표를 보고 바로 써넣으라고 했다. 11시 30분의 마지막 식이표에 병실 홋수가 워낙 많이 변경되어 있어서 나는 되도록 늦게 써넣고 싶었고, 미리 써 놓은 것을 다시 바꾸는 일이 더 복작스럽게 느껴졌지만, 알았다고 했다.
반찬을 세팅하라고 해서 열심히 하고, 이름표를 작성하고 있는데 늦었다며 바로 밥을 푸라고 했다. 산모와 보호자, 일반환자까지 서른 그릇을 퍼야 했다. 서른 개의 그릇을 챙겨서 밥을 푸려고 했더니 직원세팅용 밥솥과 남은 밥을 퍼 놓을 볼까지 준비해서 일을 시작해야지 뭘 몰라도 영 모른다고 한소리 들었다. 급히 다시 준비해서 밥을 예쁘게 예쁘게 푸려고 애쓰면서 다섯 개쯤 펐을 때
거기 아니야!!!
하는 고함이 들렸다. 오늘은 특식이 있는 날이라 사각접시에 밥을 퍼야 했었단다. 열심히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던 내가 더 크게 말했다.
밥그릇에 밥 푸라매요!!!
예전 옆집살던 은이 할머니는 아가씨 때도 성격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하지만 시집을 와서는 시어머니가 무서워서 꼼짝도 못 하고 살았다고 했다. 어느 해, 된장 장 뚜껑을 열어보시던 시어머니가 “아니! 야야! 된장이 다 어디 간 거냐? 분명히 두 항아리 가득 담았는데?” 하시며 빗자리룰 집어드셨단다. 매타작이 시작될 판이었다. 진짜 된장 한 항아리가 거의 다 비어있었단다. 그렇지만 그때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란다. “아니 엄니, 엊그제는 엄니가 고모네 퍼다 주시고, 그끄제는 뒷집 꼬망이네 퍼다 주시고, 재넘어 종기네도 함지박 가득 퍼다 주는걸 내가 봤는디요! 그러니께 장이 없지요!”하고 소리쳤다고 했다. 걸걸한 은이 할머니도 조신하게 보내던 때가 있었다는 말에 함께 콩깍지를 까던 내가 호호호 웃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내가 쉰넷이 아니라 마흔넷이었으면 억울해도 말도 못 하고 어디 구석에 앉아 질질 짰을지도 모른다. 뭐 하려고 여기 일하러 와서 엄한 소리 듣고 앉았는가, 인생을 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늘도 또 하나 배운다. 무슨 일을 하든 프로의식이 있어야 한다. 오늘의 메뉴가 무엇인지 보았어야 했고, 유산슬밥에 유산슬이 따로 나가는지 덮밥으로 나가는지 물었어야 했다. 내가 메뉴를 인지하고 질문했더라면 실수 없는 점심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