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2025년 2월 14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한밤중 비행기가 유라시아 대륙을 지나고 있다. 창밖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옆자리에서는 학생들이 곤히 잠들어 있다. 이 순간 나는 지구 어딘가의 절반은 밤이고, 절반은 낮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지금 아침이라는 것도.
아이는 이제 막 눈을 비비며 일어났을 테다. 언제나처럼 "아빠!"를 외치며 방문을 열었다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낼 것이다. 며칠 전 영상통화에서 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슬쩍슬쩍 화면을 훔쳐보는 모습이 마치 삐친 고양이 같았다. 그 눈빛에서 "아빠가 나를 두고 갔어"라는 원망이 읽혔다. 아마도 아이에게는 열흘이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것이다.
해외 출장을 가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연이은 비행기 사고 소식은 불안을 키웠고, 테러 위험이 있다는 유럽의 이야기는 마음을 더 조여왔다. 평소의 나였다면 그저 과민한 걱정이라고 웃어넘겼을 것들이, 이번엔 달랐다. 아이가 생긴 후로 죽음이란 단어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헤어질 수 있다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두려움이었다.
관광지마다 서 있는 무장 군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인생이란 게 참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다고.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 하루가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처럼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매일 저녁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마지막 포옹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생긴 이후로 잠들기 전 감사기도를 하게 된다. 살아있어서, 숨쉴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한밤중의 비행기 안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사소한 인사가, 혹은 아이와 나누는 퉁명스러운 대화 한마디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밤을 지나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불안하고 걱정되어도 좋다. 다만 우리가 서로의 아침과 밤을 함께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새벽빛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평선에 희미한 빛줄기가 그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이면, 아마도 아이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자,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