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

by 벼리

오늘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던 그때, 작은 손이 내 팔을 붙잡았다.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아빠랑 놀래.”


순간 시계를 바라보며 오늘도 학교에서 수업과 학생 상담이 빼곡히 채워진 날임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이의 진심 어린 눈빛에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 작은 눈동자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내 아이와의 시간을 자꾸 뒤로 미루는 아빠일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영웅일까?


“아빠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

반쯤은 의도적으로 던진 질문에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제일 좋아!”


그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학교에서 겪을 스트레스가 미리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을 가진 존재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니. 이보다 더 특별한 칭찬이 또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출근을 위해 할머니 집으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길, 요즘 아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하는 것이다.


“이거, 이거 내가 아빠차 사줄게. 하얀차 사줄게.”


아직 27개월밖에 안된 아이가 어떻게 자동차를 사줄 수 있을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생각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아이는 자동차 장난감을 유독 좋아한다. 나는 아내 모르게 종종 새 자동차 장난감을 사다주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한다. 그럴 때면 아내는 “또 자동차야?”라며 한숨을 쉬지만, 아이의 기쁨 앞에서는 그마저도 웃음으로 바뀐다. 내가 가장 많이 장난감을 사준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어쩌면 아이는 내 마음을 읽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보답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상상하니 가슴 속 무언가가 따스해졌다.


최근 진학 상담과 학부모 상담으로 퇴근 시간이 늦어진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집에 도착할 때면 대부분 아이는 이미 잠든 후다. 아내는 매일 같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오늘도 잠들기 전에 아빠 얘기를 했어. ‘아빠 학교 갔어? 언제 와? 아빠 보고 싶어.’ 하면서.”


그리고 가끔, 정말 가끔 운이 좋은 날이면 아이가 막 잠들려는 순간에 현관문을 열게 된다. 그럴 때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거의 잠에 빠져들었던 아이가 내 발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달려오는 것이다. 그 작은 발걸음 소리, 나를 향해 벌어지는 두 팔, 그리고 안기는 순간의 따스함과 작은 심장 박동. 이 순간만큼은 학교에서의 모든 고민과 피로가 의미 없어진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아이에게 좋은 아빠인지, 충분한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지, 아이의 기억 속에 어떤 아빠로 남게 될지. 육아서적들은 ‘질적인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이에게는 그저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하루하루 깨닫는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 사춘기가 되면, 지금처럼 내게 달려와 안기지 않을 것이다. 아빠와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잠들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들을 글로 남긴다. 아이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 시간, 아이의 눈에 내가 영웅으로 보이는 이 시간,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잡는 이 순간들을. 언젠가 힘든 날이 찾아왔을 때, 또는 아이가 나를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바라보지 않게 되었을 때, 이 기록이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 밤에는 조금 일찍 퇴근해볼까 한다. 상담을 미루고, 내일 수업 준비는 아이가 잠든 후로 미루고. 아이와 함께 블록을 쌓고, 자동차 장난감을 굴리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다. 그리고 잠들기 전, 아이의 이마에 뽀뽀하며 속삭이고 싶다.


“아빠도 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


육아는 분명 고단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또 다른 수업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이와의 이런 작은 순간들이 그 모든 고단함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아이의 맑은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실제보다 더 멋진 아빠이길 바라면서 오늘도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의 눈에 비친 가장 빛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일상의 무게 속에서도 그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조금씩 성장해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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