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싫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

by 벼리

요즘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다. 출근해서는 메신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학급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랑 놀아주는 것이 관성적인 행동으로 느껴지고, 좋은 아빠가 되려는 노력이 껍데기뿐인 것 같다.


'내가 왜 이러지?' 당황과 혼란이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데 무언가 근본적으로 결핍된 느낌이다. 나는 그럴수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정신 차리려고만 했다.


그러다 오늘 '사는 게 싫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이래서 요즘 모든 게 싫었구나.' 사는 게 싫어서 교사로서의 정체성도, 아빠로서의 정체성도 흐릿해진 것이다. 그저 동료 선생님들을 쫓아가기만 바빴고, 좋은 아빠 코스프레하기에 급급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책임감에 분주히 움직였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올해 업무 분장 발표 전에는 3학년 담임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원치 않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그 마음을 빨리 정리하고 고3 담임을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 학교도 싫고, 3학년 담임도 싫고… 이런 마음으로 학교 생활하다 보니 다른 3학년 선생님들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아빠 노릇은 어떤가. 만 3세까지는 아이 발달에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한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희생이 부모의 덕일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희생, 희생, 또 희생이다. 그 희생 속에서도 가치를 찾고자 무진 애를 쓴다. 육아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있다는 믿음, 아이와 함께 내가 성장할 거라는 믿음으로 버텨왔다.

'사는 게 싫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있다. 동시에 '내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나는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왔다.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고,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며,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지금의 불편함을 감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디에 있을까? 3학년 담임이라는 역할의 무게와 아빠라는 이름이 요구하는 희생에 짓눌려 내 본연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런 혼란 속에서 얼마 전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스스로를 증오하는 일을 그만둔 것"이라는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도 불만을 표출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런 나 자신을 은밀히 미워해 온 것은 아닐까? 고3 담임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육아의 희생이 버겁다는 것도 인정하지 못했다. 해야만 하니까…


강가에서 내면을 바라보던 싯다르타처럼, 나도 내면의 흐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곳에는 이미 모든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교사의 모습, 아빠의 모습,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를 읽고 내가 메모해둔 문장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 이것이 삶이다." 이 말이 이제야 진정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사는 게 싫다'는 말은 '이렇게 사는 게 싫다'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기 싫다는 내면의 외침. 그 목소리는 바로 진짜 '나'가 보내는 신호였던 것이다.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3학년 담임이라는 현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라는 현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바꿀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를 찾아가야 한다. 내 페이스와, 내 색깔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싯다르타가 오랜 여정 끝에 강가에서 평화를 찾았듯이, 나도 내 안의 강물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 그 소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고3 담임으로서, 아빠로서 새로운 책임을 지게 되었지만, 강물이 흘러가도 강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나’라는 본질도 변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그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오늘부터 좋은 교사,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을 멈춰야겠다. 대신 솔직한 나,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나’를 찾고, 타인이 정의한 '좋은'이 아닌, 내가 느끼는 '좋은'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 그 속에 내 답이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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