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맛이 있는 관찰기록지-
공부하다가 책상 위를 기어오르는 개미 한 마리를 보았다.
목적지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기어가고 있었다.
긴 더듬이로 앞을 더듬어 보기도 하며, 단순히 앞만 보고 전진하는 모습이 귀엽고 기특해 보이기까지 한다.
난 문득 생각했다.
저 자그마한 개미는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무리에서 떨어진 방황자인가, 모험을 즐기는 탐험가인가,
아니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나온 가장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모기를 죽이는 것과 같이 행동하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개미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것이다.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굴복해야만 하는 약자의 막연한 공포감이 내게 밀려와, 결국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풀어주기로 마음을 먹고,
임시로 종이컵에 넣어 둔 채 공부를 계속했다.
그런데 그 개미는 자유를 갈망하듯 지치지 않고 움직였다.
결국 종이컵을 탈출해 다시 책상 위를 돌아다녔다.
마치 이 구역을 지배하는 장군이라도 된 듯 당당하였다.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면서도,
이상하게 또다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내가 그 개미라면…”
바람을 가르는 화살이 내 생각에 스쳤다.
저 한낱, 조그마한 개미 따윈 죽여도 괜찮다.
나는 지구 위 최상위 포식자니까.
자연이 그렇듯, 나도 그리하여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선가 압도적 힘을 직면한 약자의 두려움이 느껴졌고,
난 기어코 그것을 죽일 수 없었다.
내 손톱보다 작은 알량한 개미가
자꾸만 나처럼 느껴졌던 탓일까..
결국 그 개미를 죽이지 못하고,
점심시간이 되자 밖으로 나가 개미를 풀어주었다.
그 찰나는 봉사정신의 만족감을 느끼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저 놓아준 것이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나도 모르게
나약하지만 삶에 대해 끈질기고 강인한 그것에게
조금의 동정심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문득 되물었다.
삶의 의미.
개미는 삶의 의미가 없는 걸까?
결론은 이랬다.
나도, 개미도 삶의 ‘의미’는 없다.
그저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듯이,
나와 개미 역시 그저 살아갈 뿐이다.
다만, ‘삶의 의미가 없다’고 하면
내가 너무 슬퍼 보일까 봐,
‘삶의 궁극적 목적이 없다’로 정정하겠다.
지구는 오늘 하루 또한 그 개미처럼 살아간다.
그 속에는 행복, 불안, 슬픔, 고독, 평온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겠지.
그 모든 감정들을 품으며,
시간이라는 지평선을 향하여 힘이 다할 때까지,
모두 자신의 더듬이로 더듬으며 걸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