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없을 수능의 밤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의 서술

by 나빈작가

어젯밤 갑작스레 할머니께 연락이 왔다.

“승우야, 절대로 내일 머리 감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항상 응원해 주시는 할머니께 감사하지만,

난 미신을 믿지 않는 편이라, 말만 알겠다 하고 평소대로 일어나서 씻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능이라는 간절함 때문일까. 괜히 깨름찍한 마음에 저녁에 씻고 수능장으로 나섰다.


찬 공기, 작년 때쯤의 온도를 느껴보며 굳은 의지로 수능장에 들어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날도 결국은 찾아오는 법이다. 수없이 깨지고, 절망하고 좌절하며, 이유 없는 그리움에 허덕이던 밤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간다.

•••


수능이 끝났다.

작년이었으면, 치지도 않았을 제2 외국어까지 치고 왔다. 이번 수능이 내 인생의 마지막일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수능장을 빠져나오며, 휴대폰을 켜보니 부재중 전화 2건과 수많은 카톡 알림들…

솔직히 열어보기가 무서웠다.

원래 사람이란, 자신들이 응원하는 사람이 무조건 잘되길 빌기에 그 사람의 실패하는 모습은 그려보지도 않기 때문인 까닭이다. 그래서, 난 내가 패잔병으로 수능 문을 나가는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집을 걸어가던 중,

어젯밤 약속했던 가족과의 저녁식사가 생각이 났다.

그때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오늘은 집에서 먹으면 안 돼요..?”

“왜 그럼 집에서 가까운 정다운 식당이나 가자.”

“아니요, 그냥 힘들어서요.”

“시험을 잘, 못 봤어?”

“아니요, 그냥 내가 힘들어서요..”


그렇게 통화가 끝난 후,

갑작스레 눈물이 고여 신호등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부터 수능은 날 굴복시킬 수 없다고 수천수만 번 다짐해 왔기에 기필코 눈물을 흘리지 않고자,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억지로 집어넣었다.

복잡한 감정, 난 오늘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이다.


그렇게 집을 들어가고, 찍혀있는 할머니의 부재중 전화.

몸과 마음이 지칠 때로 지쳐, 못 본 척하려 했지만 그래도 전화를 걸었다.

“승우야, 시험 잘 봤나?”

“아니요, 시험이 어려워서 잘, 못 봤어요.”

평소였음, 할머니께 거짓말으로라도 잘 봤다고 말했을 나지만, ‘복잡한 감정’ 탓인지 순간 욱해서 그렇게 말해버렸다.


하지만, 운이 작용한 탓일까. 딱 그 대답을 못 들으시고 되물으셔셔, 시험을 잘 봤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다가 전화는 끝나버렸다.


그 후, 아버지의 외식에 대한 권유가 계속 됐다.

난 ‘불쾌한 감정’ 때문에 순간적으로 부모님께 짜증 낼 뻔해서 눈물을 삼키며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나갔다.

뒤에서 뭐라고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단 나부터 달래기 위해 집을 뛰쳐나왔다.


그렇게 귀가 터지도록 노래를 크게 틀고 20분간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았다. 답답했던 마음과 감정이 조금씩 이해가 되며, 나의 감정을 말로 내뱉을 수 있게 되자, 집으로 돌아갔다.


하… 솔직히 무정한 세상이 밉고, 아름다운 별빛도 밉고, 나약한 나도 미운 밤이다.

수능을 떠나, 시험이란 게•••

참, … 힘들다. 내가 힘들게 견뎌왔던 과정들이 숫자로 정당화된다는 것이 너무 열받는다.

시험이 부과한 점수 따위가 유발한 나의 부정적 감정들이,

나를 응원해 준 사람들을 향하는 걸 느끼고 내가 혐오스러워지고, 이 제도가 한없이 미워졌다.


하지만, 난 이제 내가 빛날 길을 찾아간다고 굳게 믿고 그렇게 행할 것이기에 괜찮다.

나를 응원해 준 사람들을 잊지 않고, 감사함을 느끼며, 난 매일 한 발자국씩 디뎌 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우주 속 별들 같이 어두컴컴한 세상 속 자신만의 빛을 내려 노력하길 바라고, 그렇게 하길 내가 응원한다. 내일도 열심히 살아가보자.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