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하게도 푸른 점
대표 사진 속 자그마한 점이 보이는가?
그것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크기이다.
이 사진이 주는 울림이 있기에 한번 게시해 보았다.
삶이 헛헛하고, 덧없고 의미를 갈구해야만 하는 시기에,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철학적 지식, 과학적 지식, 진리적 지혜
잡히지 않는 것들에 의미를 두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이 시기에 생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불행하다면 그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 담긴’ 몇 가지 진실을 짧게나마 피력해 보겠다.
1.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채우기 위한 고민은 무모한 도전을 하게끔 하는 촉매이다.
2.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3. 우리는 과학의 전성기에 살고 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부국에 거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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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채우기 위한 고민은 무모한 도전을 하게끔 하는 촉매이다.
이는 내가 요새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알바라는 사회생활조차 두려움으로 작용한 나에게 간극을 채우기 위한 고민은 뭐라도 하게끔 하는 원동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난 곧장 수능이 끝난 후 알바를 찾아보며 지원을 하였고 난생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접하게 되었다.
알바를 구한다는 사실이 용기가 필요한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에겐 내 말이 안 와닿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간극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꿈꾸는 이상이 있으며 그것을 위해 하루라도 쉬지 않고 내달리는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내용이 이미 그들에겐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런 것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일 뿐이라서, 그 감정을 기록하고 알려주기도 하는 것이지. 내가 우월하여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건 전혀 아님을 밝힌다.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모두가 각각 다를 것이다. 실례로 주변인들에게 ‘좋은 사람’에 대해 물어보아도 “ 남에게 피해 안 주는 사람”, “ 행복하며, 행복을 전도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난 삶에 대한 태도 또한 이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물을 때도 그의 말이 곧 정답이고 진리일 리가 없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 또한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들이 기회를 창조해 내는 자그마한 파동으로 연결되는 듯싶다. 어떠한 틀에 박히거나, 누군가의 입김에 의해 자신이 너무 쉽게 흔들린다면 그건 자신을 한계 짓는 폭력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회 내에선 나의 관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무정한 사회가 나의 꿈을 짓밟는 순간을 느껴본 적, 다들 한 번쯤은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지금 글을 읽는 나의 또래 20대의 문을 여는 이들은 다양함을 인정하며, 나의 한계를 짓지 않고 다른 길들을 모색하며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과학의 전성기에 살고 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부국에 거주 중이다.
나는 이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EBS 위대한 수업에서 총, 균, 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강의를 듣고 불평등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 교수는 지리적 영향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평등함에 대해 총 5강을 통하여 역설하였다.
요새 커뮤니티며, sns며, 뉴스며 대한민국이 저출산이고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나 또한 이에 진지하게 대한민국의 이점과 단점을 찾아보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대한민국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 나라에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국가의 문제에 대해 낙담하고 있다면 그건 시간 낭비이며 감정 낭비이다. 물론, 깨어난 국민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올바른 정치 방향을 위해 힘쓰는 것은 매우 훌륭한 태도이지만, 굳이 그 막막함을 찾아가 타오르는 열망에 물을 붓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늘을 보더라도, 발은 땅에 닿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이 세상은 불평등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며 자연적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우린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죽어나가는 이들을 연민하며, 동시엔 더 풍족한 한 끼를 위해 성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환경을 선택받은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으며, 결코 무력함에 짓눌려 누워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요즘 나 또한 넘어져 있는 시간이 많은 듯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정한 시간 앞에 굴복하면 안 된다. 끝없이 저항하고, 이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어야만 한다.
일어나라 젊은이여. 당신의 하루를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탐닉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난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