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물들지 않는다
단풍도 꽃처럼 피었다가 지고
어머나, 도로 양쪽으로 나란히 서있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물든 정도가 확연히 다르네. 해가 잘 드는 쪽 길가의 은행은 노랗게 물들어 있고 다른 쪽은 새파란 은행잎이 아직 그대로네. 단풍도 꽃처럼 햇볕을 잘 받아야 하는가보다. SNS에 단풍 개화시기라고 쓰여 있길래 “단풍이 꽃인가? 개화는 무슨 개화?” 라고 웃어 넘겼는데, 단풍도 꽃처럼 피는구나. 해 잘드는 곳에 있는 은행나무는 더 노랗게 물들었다.
날마다 오늘은 은행나무가 얼마나 물이 들었나 지켜보는 산림연구원이 된 것처럼 요즘 은행만 쳐다보고 다닌다. (하하 물론 11월 20일에 올해 단풍은 얼마나 들었는지 관찰하는 연구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의 색과 속도를 주의깊게 보는 편인데 올해 은행나무 단풍은 예년과 많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도로가의 은행나무도 반쪽은 물들고 반은 새파랗고, 산 중턱에 있는 은행나무도 비슷한 고도에 있는데도 물든 정도가 제각각이다.
십여년 넘게 이 맘때가 되면 찾는 산 중턱에 있는 이웃 대학 캠퍼스의 은행나무길도 그렇다.
이런 건 어디가서 물어보지?
강원도 홍천 은행나무 숲이 해마다 시월 말이면 은행이 노랗게 물드는데, 올해는 3주전에도 파릇하다는 뉴스가 검색하니 나왔다. 그 숲에 있는 나무들도 요즘 우리동네에서 관찰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같은 바람 같은 온도 비슷한 햇살을 받아도 이처럼 다 다르게 물든다는 사실이 새롭다. 다 같이 물들지 않는다.
단풍산림연구원(?)의 역할을 다하느라 지난주 목요일에 금정산 범어사 은행나무를 보고 왔는데, 오늘 아침에도 갔다왔다. 지난주가 절정이었고 오늘은 반쯤 낙화(오, 단풍은 역시 꽃이었다, 개화와 낙화라니)한 모습이었다.
범어사에는 오래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두그루 있는데 하나는 제법 노랗게 잘 물들었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럴까. 같이 간 친구는 주차장 매연때문일까? 라고 했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이제 오늘로 올해 은행나무 단풍 구경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