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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Jul 14. 2022

1.5룸 일테리어 00

1.5룸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여정

드디어 가족

제주에서 살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가족'의 형태로 '집'을 구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돈을 모아 집세를 내고 물건을 사고 울고 웃고 떠들고 그러다 잠드는 곳을 마련했다. 누군가의 집에 얹혀 살지도, 친구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쳐 살지도, 그저 그렇게 버티기도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함께 지냈지만 처음으로 셋이 힘을 모아 살아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준비하던 것이니 우당탕탕 하더라도 잘 굴러가리라 생각하면서 살아보자 약속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강아지 하나, 둘, 셋. 우리는 이를 '드디어 가족'이라 불렀다.


전세, 연세, 월세 등 많고 많은 집을 봤지만 우리가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서른이 언제고 훌쩍 넘어버린 우리는 독립해야만 하는 존재이자 자립할 수 있는 나이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등을 떠민 적은 없지만 항상 낭떠러지 끝에서 스스로의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던 우리는 낭떠러지에서 천천히 내려가는 방법이 되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을 선택했다. 현실을 백 퍼센트 반영한 원룸은 너무 작았다. 투룸, 쓰리룸은 가고 싶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못했고 강아지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래서 선택한 1.5룸.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각자 원하는 것,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달랐고 서로 협의를 해나가야 했다. 주방이 붙어있는 거실이 하나,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방이 하나. 남들이 보기에는 셋이 살기에 무리라고 부를지 몰라도 우리는 이 정도면 넉넉하다 판단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알맞은 가구를 맞춰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채워가고 있다.


이사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는 '1.5룸 인테리어'다. 요즘은 인테리어 물품도 10평, 20평, 30평형으로 나누어서 살 수 있는 시대라 물건을 사는 데에 한참 검색해야 했다. 가구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말아야 하며 적당한 크기에 수납이 잘 되어야 했고 같은 부류의 물건은 하나 이상 탐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장바구니를 채울 때면 두어 번을 투닥인다. 꼭 필요한 물건인지 서로에게 설득해야 한다. 셋이니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그 물건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웃기지도 않는 이 상황에서 우리 셋이 모두 원하는 물건은 크고 튼튼한 '테이블'이다. 셋이서 앉아 노트북을 마음껏 펼쳐도 될 정도의 크기로, 좌식도 아니고 무려 입식 말이다. 하지만 몇 달째 우리는 장바구니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작은 밥상 하나에 셋이 옹기종기 모여 노트북을 두들기며 각자의 일을 해내고 있으니. 모두의 머릿속에는 테이블 얼른 사야 하는데, 하지만 현실이 자꾸 떠오르니 미뤄두는 것일 테다. 그래도 테이블 밑에는 어두운 걸 좋아하는 강아지 한 마리가 곱게 누워 우리의 발을 핥짝이다, 다른 한 마리는 앉아있는 우리의 허벅지 옆에 누워, 나머지는 무릎 위에 올라앉아 코를 골골대며 잠이 든다. 가끔 키보드를 두들기다 강아지의 움직임에 따라서 한번 기지개를 켠다. 덕분에 한숨을 돌린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이 테이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넉넉했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테다. 마음의 넉넉함은 천천히 채워가는 중인데 지갑의 넉넉함은 아직 채워지지 못해서 조금은 슬프다. 이 얘기는 나올 때마다 슬퍼지는 주제지만 휴지가 떨어질 때, 가스를 틀어야 할 때,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 강아지 사료가 바닥이 났을 때 회자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굶더라도 강아지들은 굶기지 말아야지. 우리가 춥더라도 강아지들은 춥게 만들지 말아야지. 우리는 아프더라도 강아지들은 아프지 않게 해야지. 아니다, 우리 모두 아프지 말자. 아프면 모두 다 돈이야. 이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결국 웃는다. 나중에 로또 되면 '집' 먼저 사자. '우리의 집'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이야기

나는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1.5룸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집을 가꾸어가는 이야기를,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스무 살 즈음에 만난 우리는 어느덧 서른이 훌쩍 넘어 정말로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여전히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도움닫기를 하는 중이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해서 어떤 날은 기어 다니기도 하고 어떨 때는 뛰어다녔다가 어쩔 땐 날아다니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걸어 다니는 우리는 '어른'일까. 우리의 이야기가 과연 '어른'처럼 보일까.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이'처럼 보였으면 한다. 친구들이 모여 함께 사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주며 이끌어가는, 아침에 일어나 눈떠서 인사를 하고 자기 전에 주절대다 잠이 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오늘은 강아지 산책 못 나갔으니 내일 일찍 일어나서 나가자고 약속했다가 늦잠 자서 재빨리 출근을 하는, 일하다가도 밥시간이 되어 작은 테이블 한쪽에선 키보드를 두드리고 구석에서 밥과 된장국을 떠서 먹는, 강아지가 빤히 얼굴을 바라보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시간을 봤더니 밥시간이 다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눈빛이었다는 걸 깨닫고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는 하루를. 이러한 우리의 이야기를 1.5룸 일테리어에 담고자 한다.




강아지 세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1.5룸짜리 강아지 집을 빌려 사람 세 명이 얹혀살고 있습니다. 십몇년이 흐른 친구들은 이제 나이가 먹고 어른이 되어 친구이자 서로에게 빼놓을 수 없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싸우고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가족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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