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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Aug 16. 2022

1.5룸 일테리어 02

꿈을 꾸던 나는 이제

사실 나는 말이야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골목대장으로 앞에 나서서 뛰어노는 것도 좋았다. 엄청 쌓아놓고 책을 읽어내는 게 좋았다. 하교 후에 학원에 들러 피아노 치는 게 즐거웠고, 학원이 끝나고 난 후에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게 편했다. 나는 이 모든 게 나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으니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머나먼 훗날에 선택할 '꿈' 앞에서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욕심을 부렸다. 노는 것도, 음악 감상도, 독서도, 공부도 시간을 쪼개며 행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든 모두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작은 실패들을 쌓아가며 마음 한 편에 커다란 실패를 축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크고 작은, 모든 실패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있어 실패란, 꼭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커다랬다.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해.', '실패도 네 실력이야.', '남들은 다 했다는데 너는 왜.'.... 상처가 되는 말들은 나를 괴롭혔고 더 이상 스스로 자라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발목에 검정 족쇄를 찼다. 그러고 나니 세상이 모두 허망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만큼 높게 치솟은 시도의 문은 내가 넘어서기에 터무니없이 컸다. 마음의 키는 한없이 작았고, 시작의 앞에서 나는 주춤거렸다.


으레 어린아이의 꿈이 그렇듯 많은 것들이 '미래'였던 적이 있다. 그러다 책이 너무 좋아서 이에 파묻혀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생각했다. 초등학교 땐 무작정 작가가 되고 싶었다. 글쓰기가 즐겁고 재밌던 나는 글이면 모든 게 다 될 것만 같았다. 공모전에 나가 상을 받았다. 글로써 인정받았다. 그때는 그걸로도 좋았다. 하지만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꿈을 접었다. 이 정도로는 작가가 될 수 없구나. 그래서 다른 꿈을 꾸어야만 했다. 작가가 될 수 없다면 '책'에 묻혀 살고 싶었다.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글을 가장 많이 쓰는 직업은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었고 나는 선택하지 못했다. 작가가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잘하는 걸, 하고 싶은 걸 한곳에 집중시키지 못했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내 선택에 따른 나의 성공, 그리고 따라올 실패들이 무서웠다.


중학교 때 즈음 선생님이 '꿈은 꾸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란 얘길 해준 적이 있다. 그러니 현실에 맞추어 꿈을 꾸지 말고, 상상하는 대로 직접 한번 만들어 보라는 이야기였다. 책에서 볼 법한 뻔한 얘기는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은 어른이 되고 난 후의 나에게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대학교 때까지 그저 글을 쓰고 읽기만 하던, 책으로 공부만 하던 나는 졸업을 앞두고 혼란스러워했다. 내가 뭘 잘하는가, 사회에 나가서 뭘 할 수 있는가,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가. 질문들은 나를 괴롭혔다. 대학생의 나는 꿈을 꾼 게 아니라 주어진 일을 쳐내기만 했더랬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공부였을까. 그냥, 하기 쉬웠던 게 공부였던 건 아닐까. 졸업하고 난 후, 서울로 향했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웃고, 울고, 행복해하는 글을 쓰면서 살고 싶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 처음으로 꿈을 꿨다.



꿈은 쓰고 달다


나는 하루에 2-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새벽에 퇴근해서 씻고 나면 다시 재출근을 했다. 녹화가 있는 전날엔 쪽잠을 자면서 밤새 준비해야만 했다. 녹화는 종일 걸렸고, 잠은 사치였다. 첫 서울살이는 고시원에서부터였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솜이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일주일에 2-3일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솜이는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웃었다. 모두 그랬다. 네 연차는 다 그런 거야. 지금은 그런 거야. 원래 다 그런 거야. 청춘이 다 그런 거야. 꿈이란 게 그런 거야. 세상이 다 그런 거야. 나는 버텼다. 집에는 힘들다 내색 한번 하지 못했다. 잘 지내고 있어, 그냥 그래, 남들 다 그렇게 살잖아, 잘 지내, 응, 건강하고. 모두 다 거짓이었다. 나는 잘 지내지 못했고 바닥을 쳤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살아내는데 나는 그렇게 살아내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휩싸였다. 잘 지낼 수 없었다. 나는 잘 울지도 못해서 혼자 끅끅 울음을 삼켜냈다. 집에 갇혔다. 낮과 밤이 바뀌었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혼자인 게 겁났다. 그리고 타인과 함께 있을 땐 숨이 막혔다. 우울에 빠진 것이다. 내 건강이 바닥으로 치닫고 음울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때,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버티고 있었더라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의 나는 서울에서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 본가로 내려가자는 솜이의 손을 잡고 제주도로 도망쳤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제주에 와서야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죽어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일을 다녔다. 나는 작가라는 직업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면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미워했다. 그 손을 잡고 있으면 나는 계속 힘들고 우울한 사람일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웃기게도,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다시는 글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하는 곳곳마다 글이 존재했다. 콘텐츠에도, 마케팅에도 글이 필요했다. 나는 문장을 조금씩 써 내려갔다. 한 문장을 쓸 때에는 미소가 피었고 다음 문장을 쓸 때에는 쾌감이 느껴졌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쿵쿵 내려앉았다. 글 쓰는 순간은 행복했고, 동시에 불행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이 행복이 거짓이면 어떡하지. 걱정의 씨앗은 작았지만 파급력이 컸다. 그래서 지레 겁먹은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꿈을 숨겨 두었다. 나는 작가를 꿈꾸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펜을 다시 잡았다. 바닥에 뒹굴러 다니는 펜을, 마음속에 숨겨놓았던 꿈을 잡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겁이 났다. 실패했던 경험은 생각보다 마음속에 오래 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응원해 줄 페이스메이커가 존재한다. 우울에 하지 않도록 눈물을 닦아줄 강아지들이 있고, 열심히 달리다가 잠시 쉴 때 함께 있어 줄 친구들이 있다. 내게는 가족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힘든 길 앞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 보고자 한다.





지금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다. 2년. 이 기간이 끝나면 쓰디쓴 고통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리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를 믿고,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꿈을 마주 보고 걸어가는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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