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봄 Jan 13. 2023

1.5룸 일테리어 03

심해어 이야기

바다에 사는 물고기


깊고 깊은 바닷속에 사는 생물은 무엇을 먹이로 삼아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들은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바탕으로 하여 일생을 견뎌갈까. 나는 수족관을 빙빙 돌며 제각각의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헤엄치는 생명을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떴다. 넓은 곳에서 헤엄치다 공간에 부딪혀 깨어지는 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커다란 수조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생각하다가 '우리'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심해에 빠진다. 바다에서 포획되어 육지로 던져진 나는.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헤엄을 쳐나가야 할까.


제주에 오고 나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일' 찾기였다. 깊은 바다에서 사는 동안 바랐던 꿈들은 세상과 맞닥뜨리며 모두 버려야 했다. 나는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일이 필요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불행했다. 수없이 구직을 했고 끊임없이 퇴사를 당했다. 밀려드는 파도에 부딪히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하지 못했다. '남들은 좋은 일 구해서 잘 먹고 잘 산다더라.' 나는 내게 와르르 쏟아내는 타인의 문장들에 남모르게 작아져야만 했다. 내게만 없는 일. 구하지 못하는 일. 하지 못하는 일, 할 수 없는 일.... 생(生)의 무게에 잠식되어 있는 내게 누군가가 그랬다. 아직 배가 불렀다고. 철이 덜 들었다고. 이기적이라고. 가시가 돋아난 말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나는 말을 삼켜했다. 그러니 저절로 혼자가 되었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하는 걸까. 꿈꾸는 게 그렇게까지 잘못된 일인 걸까. 나는 꺽꺽 울지 못해서 숨죽였다. 부모, 가족, 친구 그 누구에게도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할 만큼 숨쉬는 게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찾았다. 그리고 진짜의 바다를 무서워했다. 넓은 그곳에서 검디 검은색으로 칠해진 심해로 곧장 뛰어들어 버릴까 봐. 뛰어내리는 순간에 내가 꿈을 꿀까 봐.


일을 구했다. 내일부터 나오세요. 전화를 받을 때의 감정이 어땠더라. 아마도 기쁨이나 행복함, 그 언저리의 기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불안감 혹은 해방감. 숨 막힐 듯 답답한데도 드디어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나를 감쌌다. 나는 일을 시작했다.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아무런 감흥 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서서히 바다를 포기했다. ...그래, 그런 줄 알았다. 심해에 가라앉아 미동도 없이 살아가던 나는 점차 일상에서 새로운 걸 찾았고, 일에서 업을 생각했고, 미래를 꿈꿨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찾았다. 그리고 진짜의 바다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푸르른 세상에 뛰어들어 유려하게 헤엄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물을 무서워했지만 그 위에서 누구보다 편안하게 뜨기를 바랐다. 나는 남몰래 부표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세상에 지레 겁먹기 전에 눈을 꽉 감고 두 발을 디뎠다. 꿈으로 가는 발걸음이 불안해도 우뚝 자리에 섰다. 나는 숨을 토해내며 웃었다. 하고 싶은 '꿈'이 생긴다는 건 그런 기분이었다. 아직 물이 무서워도 내가 이를 가로지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



심해에서 올라온 물고기


우리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서귀포 시골 마을에 박힌 채 1년 넘게 살았다.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낮에 햇볕을 쬐며 생각에 잠겼다가 책을 읽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가끔 강아지 산책을 하며 밖 공기를 마시긴 했지만 주 서식지는 집이었다. 실내에서 한 뼘도 벗어나지 않았다. 누가 찾아오면 방으로 숨었고, 인기척이 느껴지면 그 자리에서 도망갔다. 별로 없는 사람들 마저도 무서웠던 것이다. 어른들은 점점 우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미래를 걱정했고 먹고사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우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각자의 걱정을 안았다. 나는 하루가 지나가는 게 무서웠다. 밖을 나가지 않으니 돈을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숨만 쉬어도 통장이 가벼워졌다. 통신비, 보험료, 카드값, 공과금은 왜 밀리지도 않고 매 달 찾아오는 건지. 모아놓은 돈 없어 갉아먹을 수도 없는데 나는 생존 비용으로 매달 몇 십만 원을 뱉어내야만 했다. 이건 나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매일 불안해했던 같다. 하지만 크게 티 내지 않았다. 우리의 지지대는 맞물려있어서 누구 하나 무너지면 우르르 무너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때가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세상의 흐름에 우리를 맡겼더라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불안이 터졌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우리는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다 아래로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었다. 심해에서 살고 있던 우리는 남들이 다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남들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정답도 없는 길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를 공감했고 응원하기로 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노력했고,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냈다. 덕분에 지금은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있을 수 있게 됐다. 출발선 앞에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우리는, 걷다가 뛰고 쉬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결승선까지 가는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안다. 우리가 열심히 헤엄쳐서 벗어난 심해는 더 이상 우리를 좀먹지 않을 것이다. 선을 넘어 한 발을 내디뎠으니 말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었다. 자립하고 싶었고 주눅 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깊은 바다에서 파도를 거슬러 올랐다. 바다를 가르고 들어오는 빛을 보며 올라간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폭풍우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안개 자욱한 망망대해에서 우리는 셋이서 서로를 끌어안고 버텼다. 내일이면 해가 뜰 거야, 햇볕비치면 따스할 거야, 곧 바다를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헤엄쳤다. 발버둥을 치며 얼마나 오래 버텼을까. 우리는 멀리 보이는 육지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파도 타는 법을 배웠으며 폭풍우에 쓸려가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제자리에서 한 발짝 전진한 셈이었다. 우리는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러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떴을 때, 우리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혹시 걸어가는 길에 놓인 깊은 바다에 풍덩 빠지더라도 이제는 헤엄쳐 나오는 법을 아니까 괜찮다. 만약 물속으로 가라앉더라도 양팔을 잡아줄 우리가 있다는 걸 아니까 괜찮다. 우리는 괜찮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1.5룸 일테리어 0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