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연호 Aug 02. 2019

기억해야 할 역사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세월호가 침몰했던 때에 나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너진 마음을 다잡아 보고자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뉴스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했다. 그 당시 다른 국민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큰 슬픔을 느꼈다. 지나치게 감정이 이입됐는지, 아주 오랫동안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밤마다 내가 있던 객실에 시커먼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질식해 정신을 잃는 악몽을 꾸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물론 괜찮다. 그때를 생각하면 끔찍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요즘 아주 지겹도록 들리는 말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 다. 너무 지겨워 다 옮기진 않았다. 역사를 기억하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란 무엇인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세월호 사고’라는 역사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선박의 무리한 개조-증축에서 드러난 안전불감증, 선장을 비롯한 일부 승조원의 도덕적 해이, 해상사고에 대비한 선진적인 매뉴얼의 부재 등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을 교훈 삼아 앞으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에 내가 느꼈던 ‘끔찍했던 기분’, ‘우울한 감정’은 어떤가. 나라 전체가 큰 슬픔에 빠지고 각종 행사와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었던 그때의 가라앉은 분위기. 이런 것들도 우리가 계속 기억해야 할 역사인가?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겠으나, 그런 슬픔과 우울함은 빨리 떨쳐 낼수록 좋다. 다시 힘을 내고 활력을 되찾아 살아나가야 할 미래가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으며 여기서 얻을 교훈도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과 전면전에 돌입했다. 국민들로 하여금 반일 감정에 들끓게 하는 원동력은 단연 ‘일제 강점기’의 역사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잔혹한 만행, 끌려간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불 같은 감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직접 일본에 피해를 입은 적은 없지만, 젊은 사람들도 ‘일제 강점기’의 끔찍한 역사를 떠올리며 항일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1868년 일본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이때의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봉건적 농경사회에서 근대적 산업국가로 발전한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전국 각지 교통 요충지에 척화비를 세운다. 척화비는 서양 오랑캐들을 배척하자고 쓰인 비석이다. 산업화로 인해 자본주의화된 일본은 그 시기 다른 서양의 제국주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공급과잉 문제에 봉착해 시장 개척을 위한 식민지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조선은 이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중국-러시아도 우리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시기였으나 청-일, 러-일 전쟁으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려 하였으나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방관과 일본의 방해로 실패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이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한 만행을 떠올리며 감정적으로 ‘분노와 울분’을 쏟아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철한 이성으로 구한말의 역사를 떠올리며 지금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대처는 어떠한가.




쇄국 정책으로 나라를 빼앗긴 경험이 있음에도 내놓는 해답은 ‘자력갱생’이다. 아이러니하다. 우리 국방을 위협하는 중국-러시아에 더불어 미사일을 쏴대며 대놓고 위협하는 북한의 존재도 추가되었지만 군사력은 오히려 약화시키며 하늘과 바다를 내어 주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국력을 가진 미국-일본과의 사이를 벌리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지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일본과의 분쟁을 중재해달라고 미국에 부탁하는 모양새를 보니 헤이그 특사가 떠오른다. 한-미-일 3각 공조를 엉망진창 내놓고 필요할 때만 미국을 찾는 걸 보니 내가 다 부끄럽다.




지금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서 잊어야 할 부분은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부분은 잊고 있다. 그러면서 무슨 “역사를 잊은 민족에…”같은 소리를 하는가.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은 역사가 한반도에서 반복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일본, 좌시 않겠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는다”같은 헛소리를 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율은 올라가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관계 파탄이 내년 총선 지지율 결집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내년 총선까지 한국이 무사하리란 보장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중한 상황이다.




덧붙이는 이야기




오늘(2일) 일본은 대한민국을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응해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로 일본을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이에 더하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을 파기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지소미아는 북한의 군사적 동향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협정이다. 일본과의 무역 분쟁에 군사협정 파기를 대응책으로 내놓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북한의 핵미사일이 일본을 향한 것이며, 남한을 겨냥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지소미아를 협상카드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지소미아 파기를 검토하겠다는 말 자체가 우리의 우방은 북한이고, 일본을 주적으로 생각한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인 것이다.




적화된 한반도와 중-러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새롭게 짜여질 것이다. 대폭 인상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통해 마지막으로 한국의 의사를 확인하고 국제사회에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없음’을 공표할 것이다. 거짓 평화에 속은 멍청하고 나약한 국가를 도와줄 우호국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북주의의 최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