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까, 숨 꾹 참고.
회사 일이 바쁘다. 예상치 못한 야근이 자꾸 생기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하느라 눈알이 건조해지다 못해 데굴 굴러 나올 지경이다. 조금 여유가 생기나 하더라도 업무 특성상 공휴일이나 주말에도 연락이 오는 일은 부지기수다. 나는 태생이 게으른 사람인데, 상황이 자꾸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걱정과 근심은 늘 새끼를 친다. 숫자들은 성적표가 되어 오고 오늘의 결과는 결국 내일의 비교지수가 된다. 오늘 잘했으면 내일은 더 잘해야 한다. 오늘 못했으면 내일은 더더 잘해야 한다. 영업하는 팀의 숙명이지만, 경쟁이 너무 싫은 사람에게는 매일이 괴로운 부담감이기도 한다. 왜 오늘은, 왜 어제는, 왜 이번 주는, 그러면 다음 주는, 하고 끊임없이 분석해야 하는데 사실 그 분석이라는 게 어떻게 고객들의 주머니를 털까, 이 마진율 높은 제품을 어떻게 하면 더 비싸게 판매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니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가끔 내가 사기꾼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예전 중학생 때였나, 도덕 시간에 배웠던 것들 중 자아실현의 마지막 단계가 직장이었던 것 같은데 다 거짓말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자아는 없다. 그냥 회사용 인격체로 갈아 끼울 뿐. 영업용 미소 장전이다. 네네, 대표님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가치관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반복하면서 매일을 살아가도 녹초가 되어 퇴근을 했을 때 밀려오는 허무함이란 결국 내가 참고 안고 가야 하는 것이겠다. 이렇듯 현타가 세게 올 때면 늘 속으로 최면을 걸 듯이 반복해서 말하고는 한다. 이 만한 직장에서 그래도 능력껏 업무를 하면서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럭키 한 것이라고, 그리고 일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가 등에 커다란 짐을 이고 걸어가는 거니까. 재벌이 아닌 이상 우린 다 당나귀 아닌가? 다 이러고 산다. 늘 속으로 외친다. 다 이러고 산다. 오버하지 말자.
근데 억울하다. 진짜, 다 이러고 사나? 그렇다고 나도 이러고 살아야 하나?
최근 새로 나가기 시작한 독서모임에서 이 모임이 자신에게는 숨구멍 같은 존재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 책을 좀 더 읽어야지 싶어서 나간 독서 모임이 그에겐 그렇게나 큰 의미였다. 물론 나도 너무 즐겁게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나에게 숨구멍 같은 것이 있었나 반문하게 된다. 이젠 일상이 된 운동이나, 새롭게 시작한 피아노 클래스 정도가 될 수 있을까?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숨 쉴 구멍을 찾아야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책임감과 의무감, 그리고 당나귀의 역할만이 남아 있는 사무실의 내 자리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이 서글프다. 주변의 동료들이 항상 말한다. 괜찮으세요?라고. 딱히 괜찮지 않아요. 근데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
다음 달의 월세와 내 엥겔 지수를 위해, 나는 회사와 업무 스트레스를 버텨야 한다. 사는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냐 하지만 경제 상황이 말이 아닌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 또 금물, 완전 금물이다. 무모하게 도전에 몸을 던지기엔 나 자신 챙기기도. 너무 버거운 21세기이다. 전기세도 오른다는데, 홀리 몰리! 머릿속에 질소가 퐁퐁 차오른다. 숨구멍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22년이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내 삶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거창한 사이드 프로젝트도 아니다. 독서모임과 같이 소소한 숨구멍을 좀 더 뚫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있는 것들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