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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하 Jun 24. 2023

북극성

글 스터디 항해 5회차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2009년도 수능시험의  필적확인 문구였던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를 소재로 글을 쓰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공미포 1,526자.




너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수없이 많은 날들 중에 하필이면 오늘이 너의 장례식이었다. 2023년 6월 21일, 한 해 중 가장 해가 길다는 날. 밤과, 달과, 하늘에 뜬 별들을 좋아하던 너는 한 해 중 가장 밤이 짧은 날에 별이 되었다.

너의 영정 사진 옆을 장식한 꽃송이와, 웃고 있는 네 앞에 놓인 향과,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 향에 불을 붙이면 힘없이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들. 나는 네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금세 웃곤 했다. 너는 바람에 스쳐 구르는 낙엽을 보면서도 웃는 사람이었으니까. 오늘은 날씨도 정말 좋았다. 택시를 타고 오는 길 바라본 풍경들. 파란 하늘, 녹음이 우거진 산과 가로수들, 양처럼 노니는 구름과 염소처럼 뛰노는 길가의 아이들. 바람 한 점 없이 내리쬐는 햇볕.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네게도 그런 날이었을까.

네가 오늘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완벽한 날이라 하였을까, 밤이 너무 짧아 아쉬운 날이라 하였을까. 밤이 오지 않는 낮이 싫다고 하였을까, 밤이 오면 찾아오는 외로움이 짧아 좋다고 하였을까. 너는 밤을 사랑했다. 아마도 너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외로움과, 슬픔과, 사소하게 애끓는 한낱 애정들마저 사랑했을 것이다. 새벽과 함께 실없이 찾아와 나를 슬프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허름한 애상과 서러운 기억들. 길거리에 흐르는 철 지난 유행가 제목처럼 너는 이별까지 사랑했을까.

너와의 기억은 온통 눅눅한 기억밖에 없다. 열대야가 한창인 옥탑 한편에 펼쳐둔 평상에서 물 맺힌 캔맥주를 나눠마시던 여름의 습한 공기와 물기 어린 가로등 불빛들이나, 끈적이는 장판 위에 이불을 깔고 누워 천장의 곰팡이 무늬를 세던 밤들. 너와 함께하던 모든 날이 눅눅했지만, 우거졌다.

너와 함께한 나의 모든 날이 여름의 숲처럼 무성했으며, 너와 함께한 기억들이 빼곡하여 어제 일처럼 푸르게 생생했다. 너와의 추억이 녹음처럼 우거졌다. 우거진 추억 속, 홀로 걷는 새벽의 이슬은 생경했다. 해는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른 새벽, 지평선 아래 숨은 해가 어스름하게 빛나는 사이의 시간. 아직은 어슴푸레한 하늘에 미처 사라지지 못한 별들이 동공에 드리웠다.

나는 문득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본 광고를 떠올렸다. 엄마는 어디에 있냐는 물음에 막연히 하늘을 가리키던 아이스크림 광고. 이제는 아빠 역할을 맡은 배우도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너도 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하늘의 별을 손으로 헤아려본다. 하나, 둘, 셋… 수없이 많은 별들은 끝을 알 수 없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보다 볼 수 없는 별들이 많다는 이야기. 그럼 이 하늘 위에는 내가 볼 수 있는 별보다 많은 별들이 존재하겠지.

너는 어떤 별이 되었으려나. 이왕이면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라면 좋겠다. 너는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으니, 가장 빽빽한 별무리 한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었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너를 찾을 수 있도록,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나의 욕심인가. 그렇다면 나 역시 네가 찾을 수 있도록 빛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수밖에.

새벽이 오면 어김없이 빛나는 금성처럼, 밤하늘의 뚜렷한 등대처럼 빛나는, 그 옛날 사람들을 안내했다는 북극성처럼, 남십자성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빛나는 너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갈고닦아야지. 하늘에서 빛나는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하늘에서 반짝일 네가 쉬이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나 역시 지상에서 빛나지 않으면 안 될 테니.

그러니 나는 오늘도 슬퍼하지 않으리라. 네가 없는 날들이 비록 네가 있던 날들만큼 찬란하지 않을지언정, 구겨진 모서리를 깔끔히 펴 닦아 살아가야지. 네가 없는 모든 날이 한없이 펼쳐진 가파른 계단일지라도 한 걸음씩 걸어가야지. 그렇게 걷다가 걷다 보면 언젠가 한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두 팔 벌린 네가 날 맞이할 테니.

기약 없는 약속과 정상 없는 언덕, 끝없는 갈림길과 무한의 계단도 네 기다림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니.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나는 오늘도 수없이 많은 별을 헤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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