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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하 Mar 19. 2023

새, 만남.

글스터디 '항해' 2023년 2회차 '새 만남'

'새 만남'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공미포 2,439자


+글을 쓰고 나서야 요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9시 등교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n년이 지나서 잘 모릅니다… 혹시나 현재 고등학생이신 분들께서 보신다면 그 시절 고등학교인가보다 하고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등굣길엔 까마귀가 많았다. 이전에는 없던 풍경이었다. 아니, 사실은 알 수 없었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등교하는 것은 간만이었다. 함께 사는 반려견이 제 이어폰을 죄 물어뜯어 망가뜨린 탓이었다. 논길을 따라 한없이 걷다 보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겨울의 끝자락, 바야흐로 봄의 도입에 걸쳐진 한적한 풍경과, 텅 비어버린 거리들. 아직은 텅 빈 논두렁, 때가 일러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새벽 다섯시 이십오분. 해조차 떠오르지 않은 어슴푸레한 하늘 아래로 낡아빠진 자전거를 하염없이 끌고 걸었다.


답지 않게 지난 이틀간은 눈이 내렸다. 제대로 정돈되지 않아 미끄럽고 질척한 낡은 샛길에선 자전거를 타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저 멀리 기차가 지나가고, 머리칼처럼 길게 늘어진 전선들이 을씨년스럽게 웅성댔다. 잎이 나지 않은 황량한 나무, 나무만큼이나 헐벗은 전신주. 더 이상 버스가 서지 않는 마을회관 앞 버스 정류장. 초등학생일 무렵 폐쇄되어 이제는 칠이 다 바랜 허름한 간이역. 버스도, 기차도 아무도 찾지 않는 마을. 무인도가 어디 따로 있으랴, 내겐 이 동네가 무인도였다. 마을 어귀 색색의 천들을 휘날리며 선 당산나무, 어서 오라며 환영 인사가 적힌 입구를 알리는 비석. 그 옆에 위치한 두 번째 버스 정류장. 작년까지는 이곳을 종점으로 한 버스가 하루에 일곱 대 정도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았다. 버스가 돌아나가던 공터엔 쓰레기가 가득했다. 언제 주차되었는지도 모를 낡은 승용차 한 대와, 바람 빠진 공, 타이어, 글자가 바랜 현수막. 그 사이로 굴러다니는 버스 시간표가 붙은 푯말만이 이곳에도 버스가 있었음을 증명했다. 마을 어귀를 기점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펼쳐졌다. 앞서 걸어온 길이 흙길은 아니었으나 눈조차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시멘트 길은 내 마음만큼이나 눅눅했다. 낡아빠진 자전거에 훌쩍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옆 마을까지 간다면 여섯시 십분에 읍내로 나가는 첫 차를 탈 수 있을 터이지만 나는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옆 마을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자전거를 타고 가면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읍내의 터미널에서 내리는 데까지만 사십 분이 족히 걸릴 테고, 터미널에서 내리면 학교까지 다시 이십 분을 걸어야 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전거를 타는 게 빨랐다. 큰길이 아닌 샛길을 이용한다면 한 시간 십분 정도면 학교에 도착할 것이었다. 왕복 이 차선, 중앙선을 그린 노란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도로변을 달리고 있었다. 까마귀 우는소리가 들렸다. 도로만큼이나 헤진 가드레일, 가드레일 저 아래로 흐르는 개천이라고 부르기도 어설픈 물줄기,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나뭇가지, 여전히 윙윙 소리를 내며 우는 전선들. 해마다 이 무렵이 되면 갈피를 잃고는 했다. 새로운 것은 낯설었다. 늘 보는 얼굴들이 뭐가 새롭냐 묻는다면 부정할 길 없겠으나 내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익숙한 얼굴들, 그러나 익숙해지지 않을 얼굴들. 비슷하지만 조금은 낯선 교실과, 손이 닿지 않은 책상과 걸상들, 바뀐 시간표와, 아침 조례 시간에 마주하는 건 처음일 선생님. 나는 새로운 것들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익숙한 것들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익숙함 속에 안주하고 싶었다. 익숙한 얼굴들, 익숙한 교실과 내 손이 닿은 책상과 걸상, 내 방식대로 정리된 사물함 속 익숙한 교과서들. 끝이 떨어진 채 붙은 교실 앞 익숙한 시간표와 아침 조례 시간의 익숙한 선생님.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보다는 익숙함에 질려버리는 쪽이 나았다.


생각하며 페달을 밟다 보니 익숙하지만 생소한 교문이 눈에 띄었다. 익숙한 운동장, 익숙한 건물, 익숙한 풍경이지만 평소와는 다른 모습. 3월 2일, 개학날임에도 텅 빈 운동장과 열리지 않은 문들과 사람 한 명 없는 적막한 풍경. 명패가 떨어진 교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다. □□고등학교는 지난 2월 한 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게 되었으니. 시골이라면 으레 있는 일이었다.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학교에 다닐 아이들이 사라지는 현상.


자전거로 도로를 달리며 나는 문득 사라진 아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이 마을에, 이 지역에 살지 않았으니 사라진 적도 없는 일일까. 사라진 아이들은 도시로 떠난다.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예전 학교에 다닐 때에도 선생님들은 늘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한다고 했다. 도시는 사라진 아이들의 무덤이었다. 나는 도시가 꼭 무덤처럼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 주변에 무엇이 있든 눈길도 주지 않고 거니는 사람들과 시끄러운 차 소리. 도시에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조차 잠든 도시에서 높다란 건물들만이 비석으로 남아 거리를 기렸다.


도시에 가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도시의 대학에 가면, 도시에서 취직하면, 도시에 살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헛된 상상들. 도시에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변했다.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으며, 어딘가 피곤한 모습이었다. 별을 보던 그 모습도, 함께 자전거를 타며 마을을 누비던 웃음도, 어른들을 따라 낚시를 가겠다 졸라대던 어린 날의 추억들. 그들은 모든 것을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이곳을 보고 있지 않았다. 한 번 도시의 물을 먹은 사람은 언제나 도시의 이야기만 했다. 도시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도시의 불빛이 얼마나 환한지, 어디에 공원이 있고 어디에 학교가 있는지.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도시에 매어 둔 것 같았다.


그러니 나는 사라진 아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부터 도시에 매인 아이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그들도 이런 생각을 할까, 그들은 스스로가 날 때부터 도시에 매였다는 걸 알까?


상념에 잠기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읍내, 터미널을 지나 학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저 멀리 새로운 학교가 보였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겠으나 나에게는 새로운 것들. 낯선 철제 교문과 낯선 건물, 낯선 운동장과 낯선 화단. 낯선 현관 앞을 향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는 낯선 얼굴들. 누군가에겐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했을 것들이 내겐 서러우리만큼 낯설었다. 여전히 까마귀가 울고 있었다. 골목 구석에 앉은 까마귀가 못내 거슬려 거칠게 자전거를 모니, 까마귀가 혼비백산 날개를 퍼득였다. 나 역시 이곳에 매일 것만 같았다. 읍내에 매여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려 발버둥 칠 나. 읍내에 매이는 건 어떤 삶일지를 고민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 그중에 제일 낯선 나. 끝없이 울어대는 전깃줄, 새, 만남. 나는 내가 한없이 동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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