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음악 틀어줘
나는 겁을 잔뜩 먹고 잠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어득 어득 잠이 깼을 때 그가 보였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멀뚱멀뚱 천장이 보였다
힘은 없었다
그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그가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길 바랐다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힘들었지? 고생했어. 괜찮아질 거야."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다.
나는 너무나 무서웠고 힘들었다.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나 다리 아파."
그러고는 소파로 가버렸다.
이 한마디가 참으로 아팠다. 서글펐다.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왔다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어게인
내가 좋아하는 엄정화 언니의 페스티벌이었다
'그래,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웃자. 내게 좋은 선택을 한 거야. 괜찮을 거야.'
나는 내게 말해주었다. 애써 그에게 말했다
"페스티벌이네~ 그래 맞아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에게 미안한 마음에 나를 돌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돌봐야 한다는데 뭘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랐다.
나는 임신 7주 차에 계류유산으로 소파수술을 해야 했다.
태아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믿지 않았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결정할 수 없었다
다른 병원에 가서 똑같은 말을 듣고서야 울었다
의사선생님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소파수술을 하거나 자연적으로 몸에서 분리되는 것을 기다리거나.
물론 의사선생님은 수술을 적극 추천하였다. 나는 멈칫했다. 바로 결정하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나의 몸을 믿지도 못했다. 유산은 했지만 임신 증상인 울렁증이 멈추지 않았다. 유산을 했는데 임신 증상을 느낀다는 게 싫었다. 최대한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수술을 선택했다. 내가 선택했지만 불편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묻고 또 물었지만 알 수 없었다
끝은 결국 자책으로 마무리 지었다
유산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있었다.
"건강하지 않은 아이라서 그랬던 거야. 오히려 잘 됐어."
"유산하고 나면 금방 임신한데."
그들에겐 뭐가 그리 쉬운 걸까?
이거 아니면 저거.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보고 말을 하는 걸까?
엄마의 말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임신이 정말 잘 됐거든. 오히려 임신이 안되길 바랐어. 근데 너는 왜 임신이 안될까?"
나는 괜찮냐고 묻는 이는 없었다.
아이를 잃어 상심하진 않았냐고,
수술을 결심할 때 힘들진 않았냐고,
수술방 들어갈 때 무섭진 않았냐고,
상실의 아픔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냐고,
아이는 잘 보내주었냐고,
나조차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한 생각은 너무나 살기 위한 한 마디였다.
'아! 한동안은 임신한다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