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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없는여자 Apr 05. 2024

엄마 아이 없는 내가 창피해?

나의 편은 없었다.

나는 아주 많이 당황해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냥 받아주라는 눈치를 주었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굳었다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속은 바이킹을 억지로 타고 곧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머~ 어머~ 축하해요. 엄마가 그렇게 걱정을 했었는데 임신해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하필 엄마 친구를 여기서 만나다니... 나는 물을 흠뻑 먹은 종이처럼 축 늘어져서 아줌마에 말을 듣고 있었다.

엄마 친구는 1초도 쉬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기어코 하고 마는 분이다.

듣는 상대는 자신의 말을 할 틈을 1mm도 내어주지 않는 분이다.

이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말 없이 엄마 친구의 반응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참 다행인 건, 엄마 친구를 만난 장소가 횡단보도였다는 거다.

무엇보다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건너가는 상황이라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엄마 친구를 만나는 순간은 짧은 찰나였지만

나는 가끔 그 순간에 가 있는다. 그리고 그때 엄마 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한다.


"아.. 소식 못 들으셨군요. 아.. 저 유산했어요. 지금은 회복했고요."


또는

"축하해 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저 유산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임신은 안되더라고요."


또는

"그만하실래요. 이제 간신히 유산하고 회복했거든요. 아주머니 덕분에 다시 우울해졌어요."



아... 다시 먹먹해진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나씩 꺼내놓는다고 속이 후련해지지 않는 게 더 싫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하면 속이 후련해 질까?

나는 털어내고 가벼워지고 싶은데 왜 자꾸만 그곳으로 가 있는 걸까?


아직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일까?

깊숙이 꾹 움켜쥐고 있는 말은 뭐지?


아... 엄마였다.

당황한 나를 도와주지 않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였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친구들에게 딸의 임신 소식은 전했으면서 왜 유산소식은 전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도 왜 한발 물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걸까?


내가 창피한가?

엄마는 임신하지 못하는 내가 창피한 걸까?


엄마는 내 편 인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엄마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내가 힘들어 엄마를 찾아가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엄마는 더 크고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나의 일은 아무 일도 아니라며 엄마를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 엄마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나의 딸이자, 친구이자 엄마 같아."


나는 딸이고 엄마는 엄마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아빠 엄마가 싸우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했고,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동생 둘을 돌봐야 했고, 8남매 장남의 첫째 딸로 장남 같은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고집은 세지만 똑 부러지게 제일은 알아서 해내는 열 손가락 중에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 덕에 나는 눈치가 엄청 빨랐고 용돈도 많이 받았다. 부모님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 주셨고 가족 안에서 나의 의견은 꽤나 힘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편은 없었다.


아프고 힘들 때 등 비빌 사람은 없었다. 무엇이든 척척 혼자 해내야 했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그때 하고 싶은 말을 제금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다가 그래도 지금 내 솟 후련하자고 그때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본다.


엄마! 엄마는 왜 그때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아줌마에게도, 나에게도


나는 엄마가 횡당보도를 건너와서 나에게 한 마디 해주길 바랐어.

주책이라며 그 아줌마 욕을 하든,

그 아줌마 말 신경 쓰지 말라고, 그 아줌마가 말이 많아 쓸데없는 말을 해서 나도 신경 안 써 라면서 나를 위로해 주길 바랐어.


나도 깨물면 아픈 손가락이잖아

나 하나도 안 씩씩해

엄마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싶었어

그러면 엄마가 등도 쓰다듬어주고, 괜찮다고 해주는 말도 듣고 싶었어.


엄마가 내가 그리는 엄마의 모습을 내게 보여줄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그래도 그날은 그래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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