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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없는여자 Feb 18. 2024

0.5mm 눈으로는 보기조차 힘든 크기네.

다르게 살 자신이 없어 계속했다

용어가 참 싫었다

"난자를 채취할 겁니다."

내 몸에서 무언가를 빼낸다는 단어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는 실제 크기가 얼마만 한지 묻지도 못했다

검색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도 없다

지금 글을 쓰기 위해 검색창에 '난자 크기'를 검색해 봤다.

0.5mm

눈으로는 보기조차 힘든 크기네.

실제 사이즈는 0.5mm인 난자가 그때는 왜 그렇게도 커다랗게 느껴졌을까?

이렇게 작은 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렇게나 겁먹진 않았을 텐데..

난소에서 난자를 꺼내는 과정은 이렇다

나는 마취를 당한다

의사선생님은 난소에 주삿바늘을 콕! 찔러 쭈욱 빨아들인다. 액체 속에 난자가 들어있어야 한다.

나는 늘 실패였다

호르몬 주사를 맞아도 2개, 3개 정도의 난자가 자랐다

이마저도 시술할 수 없었다

마취에서 덜 깨어난 상태에서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선생님 표정만 봐도 실패했다는 걸 안다

이번에는 울지 말아야지. 담담히 알았다고 말해야지. 했지만

나는 언제나 울었다. 크게 울지도 못했다.

시술을 마치고 누워있는 공간에는 커튼 하나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

내 속상함보다는 창피함이 먼저였다

커튼 건너편 대화는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쌩쌩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나고, 의사선생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는 오래 누워 있을 수도 없다

적당히 잠이 깼다면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비워주어야 한다.

자동문이 열렸다 저 멀리 소파에 남편이 보인다

남편은 이미 의사선생님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편을 쳐다보는 게 힘들었다

나는 소파에 주저앉듯 앉았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울 수도 안 울 수도 없었다

남편이 나를 부축해 약국에 갔다

처방받은 약을 챙겼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홀로 누워 울다 잠들었다

몸을 건강하고 단단하게 만든다고 매일 달리기를 했었다

지금은 다시 달릴 힘이 없었다 한 발 한 발 걷기도 힘이 들었다

그래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살살 걷기를 시작했다

배가 당기고 통증이 있다 그래도 살살 걸었다 배가 아플 때마다 울컥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쏟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왜 그리도 미련했을까? 그때 나는 나에게 왜 그리도 가혹했을까?

실패를 하고 돌아올 때마다 다짐을 했었다

'이제 다시는 시도하지 않을 거야. 이거면 된 거야.'

집에 돌아와 몸이 회복이 되기 시작하면

'그래도... 한 번만 더 시도해 볼까?'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꿈이고 희망이고 다 사라지고 말라비틀어진 껍데기가 하나 남아있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 자신은 없어.'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살 자신이 없어 계속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실패하는 시도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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