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 수필: 기토가 무토를 보며 안타까워 하는 이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관계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고통이 되는 관계라면 어떨까.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 의리를 다하려고, 그 끈을 놓지 못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내가 어떻게 해줬는데', '어쩜 이럴 수 있나'라는 푸념으로 자신을 괴롭힐 수 있으니.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인연과 악연을 구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 남의 약점을 빌미 삼아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을 멀리 한다. 반대로 나의 거울이 되어주는 사람, 나라는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무토(戊土)나 기토(己土)는 분쟁을 피하고 조절하는 기운을 가진다. 특히 무토는 포용적 태도를 보이며,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는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태산과 같이 단단하니 인내력도 좋다. 또한 어렵고 낯선 대상을 포용하는 힘이 있어 관계망 확장에 유리하다. 다만 작은 변화에 둔감하니 익숙한 대상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소홀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무심한 듯 보여도 포용심이 강한, 어딘가 가깝고도 먼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친구들. 1년에 한두 번 만나지만 쉽게 마음을 터놓는 그런 사이. 나의 민감함을 받아주는 '태산' 같은 사람들이다.
20년 지기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업무에 좇겨 대화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소통하며 일하고, 밥 먹으며 통화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친구를 무례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만나러 온 그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왜 그런 해석이 가능할까. 상황 너머 본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토 일간의 경우 갈등 조절 능력이 좋다. 문제 상황이 닥쳐도 잘 중재하기 때문에 다툼을 만들지 않는다. 게다가 신강한(독립적인) 경우라면 상대에게 의지하거나 휘둘릴 일은 없다. 각자의 상황과 기분을 이해하니, 무리한 요구나 어설픈 충고는 하지 않는다.
무토 일간의 친구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잘 돕는다. 동료의 어려움을 두고 보지 못해, 해결방식을 제시해 주니 얼마나 든든한가. 그러나 가끔 그 태도가 문제가 되는데, 사람들의 무분별한 요구로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모든 것을 의지하고 공유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힘들어진 것이다.
"나는 예민한 게 문제야. 나의 경우 적당한 선을 만들어, 아니다 싶을 경우 적절히 거리를 가져. 그래서 인맥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어. 하지만 적당한 선을 지키니 에너지를 덜 쓰게 되지. 소수의 사람과 더 오래 만나는 이점도 있어. 넌 그 반대인 것 같아. 모든 사람들을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으니, 인맥을 넓히는 데 좋겠지. 사람들의 넋두리도 들어주고,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존재니까. "
무토와 기토는 관계 정립에 있어 다른 측면을 보인다. 기토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는 반면, 무토는 새로운 소통에 관심이 있다. 친구의 어려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만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포용력이 때론 화근이 되어 돌아오는 것. 태산과 같은 사람도 폭우에 흔들리고 가뭄에 마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무분별한 수용은 미덕이 아니다. 만인을 포용하려다 주변 사람들(가족, 지인)을 섭섭하게 만든다. 타인과의 교류는 에너지(시간)소비와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나(가족)에게 쓰는 기운을 나눠 써야 하니, 타인을 향한 과도한 친철은 갈등의 씨앗이 된다.
배려와 관용은 이상적 덕목이다. 하지만 선을 넘어가면 번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부족하다 싶으면 섭섭함을 표한다. 이에 모든 관계는 보이지 않는 선(도리, 경계, 규칙, 절제)을 필요로 한다. 그 선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중심이 되니, 나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고 타인과의 소통을 즐겁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기토의 시선이다. 소중한 걸 놓치고 사는 무토의 무심함이 안타까워 보인 것. 그러나 무토의 시선에서 이런 세심함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모두가 '타자의 시선'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내 울타리를 지키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