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 수필: 양인격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들이 태어나고 처음 찾은 철학원. 연세 많은 어르신은 차가운 사주라며, 이름에 화火를 넣어주셨다. 곧이어 주머니를 탈탈 털어 동무들의 배를 채워줄 거라며 탈재를 염려했다. 그 뒤 한 명리학자는 그릇이 큰 사주(양인격)라며, 나라에서 품을 아이라고 했다. 소통의 한계를 느끼면 입을 닫을 것이니, 논리적인 접근만이 통할 것이라 충고했다.
아들은 그 말이 무색할 만큼 따뜻한 아이로 성장했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을 기점으로 진중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아이로 바뀌어갔다. 친구들을 리더하고 교칙을 잘 지키는 학생으로 인정받길 바랐다. 다만 학습에 큰 애살이 없었으니, 그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들은 절제하는 힘(편관)이 강해서인지, 통제되지 않은 상황을 싫어했다. 얼마 전 잦은 두통을 호소했는데, 며칠 째 잠만 자는 걸 보니 마음이 쓰였다. 며칠이 지났을까. 아들과 소통할 기회를 포착했고, '삶과 죽음', '의무와 권리'에 관해 3일간의 긴 대화를 나누었다.
양인격은 양간 월지에 겁재를 둔 경우로, 겁재는 일간의 것(재물, 자격, 사람)을 빼앗는 기운이다. 평생 경쟁자와 함께 사는 것이니, 투쟁심, 추진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자존심과 고집이 세고, 모든 일에 과신하는 만큼 회복력도 좋다. 이에 양인격은 자신의 에너지를 사익보다 대의를 이루는 데 사용하는 게 좋다. 사익에 집착하거나 쾌락에 빠지면 가정의 평화와 안위를 깨뜨릴 수 있다.
무엇보다 양인격은 칠살(편관)을 필요로 한다. 관성은 자신의 강력한 에너지를 눌러 통제하는 기운이다. 일반적으로 편관은 제복해야 마땅하나 양인격에는 상신으로 사용한다. 관성이 너무 강하면 독재적인 태도를 보이고, 관성이 없으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해 충동적으로 행동하니, 이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양인격 자녀를 둔 부모라면 먼저 명령이나 억압적인 소통법은 버려야 한다.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는 경험을 해야, 대상관계의 올바른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를 절제하는 요령을 가르쳐야 한다. 목표를 향해 달리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관용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자녀 교육은 도를 닦는 일과 같다. 나의 욕심을 비우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과 기대를 눌러야 한다.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며칠 전 아들은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하겠다며 다짐했다. 나는 실현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현실적인 판단을 제쳐두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자체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고, 꿈이 작은 것보다야 큰 게 나으니. 오늘도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사춘기 혼란을 겪고 있는 아들에게 짐을 더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