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기심은 나를 움직이고 무모한 도전은 세상을 바꾼다.
가난을 향해 달려라
- 호기심은 나를 움직이고 무모한 도전은 세상을 바꾼다.
나는 ‘안 된다’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왜냐하면 지금껏 살면서 그 한 마디 때문에 수없이 많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은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병조야! 웃는 모습이 참 예쁘구나. 항상 호기심으로 가득 찬 네 모습이 사실은 무척 귀엽단다. 그런데 병조야! 공부시간에는 아무리 궁금한 일이 많아도 앉아서 선생님과 같이 할 줄 아는 의젓함도 키워야 한단다. 책도 많이 읽고, 수학도 잘 하는 병조가 의젓함만 키운다면 정말 멋있을 거다. 참! 너 운동장 놀이 그림 잘 그렸더라. 글씨도 많이 예뻐졌고... 1996년 5월 1일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은 제대로 앉아서 수업을 듣는데 너는 왜 가만히 잇지 못하니? 쓸데없는 질문 좀 그만해! 그리고 그건 시험에도 안 나오는 거야!” 세상이 너무 궁금해서 질문을 했을 뿐인데 그때는 왜 혼나야 하는지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질문이 많았다. 편지의 내용처럼 수학도 정말 잘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동네에 파라솔을 펴 놓고 학습지 선생님들이 새로운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아이들을 유혹할 선물과 함께 각종 테스트를 진행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선물과 엄마의 권유로 파라솔 밑에 앉아 테스트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파라솔 밑에 앉으니 학습지 선생님께서 수학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문제지를 주셨다. 문제지를 주시고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을 모집하기 위해 가셨다. 문제지를 받고 문제지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풀었다. 선생님을 불렀더니 선생님께서 놀라며 다가오셨다. “벌써 다 풀었니?” 문제지를 보고 난 뒤에 화를 내시며 찍지 말고 제대로 풀라며 화를 내셨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난 정말 행복하게 한 문제 한 문제를 풀었는데 말이다! “전 제대로 풀었는데요!” 선생님은 장난치면 혼낸다며 말과 함께 채점을 하기 시작하셨다. 채점 결과 2문제를 틀렸다. 채점 후 칭찬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일까? 왜 계산과정이 없냐며, 진지하게 계산과정을 적으면서 문제를 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문제지를 하나 주셨다. 기분은 나빴지만 좋아하는 수학이었기에 다시 난 행복하게 문제를 풀었다.
이번에도 문제를 푸는데 2~3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계산과정을 하나도 적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암산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문제를 푼 나를 보고 선생님은 놀란 표정을 지으시며 다시 채점을 하셨다. 채점결과 또 다시 2문제를 틀렸다. 개인적으로 아쉬웠지만 나름 만족스러워하고 있는데, 선생님과 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거봐! 암산으로 덤벙덤벙 빨리 문제를 푸니까 두 문제나 틀렸잖아! 앞으로 계산과정하고 검산까지 하면 다 맞을 수 있을 거야! 선생님과 학습지 하면 수학을 더 잘하게 될 거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이해를 못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 실수로 두 문제를 틀린 것인데 이것이 뭐가 잘 못 될 것일까? 옆에 있는 친구들은 계산식도 적혀 있고 검산도 한 것 같은데도 나보다 더 많이 틀렸는데 말이다!
만약 내가 다 맞췄다고 해도 다른 이유로 학습지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수학 자체가 정말 싫어졌다.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문제를 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때부터 이상한 수학시간이 시작되었다. 6X7 = 42가 바로 나왔지만 선생님은 6을 7번 더하게 하셨고, 다시 검토를 해서 맞는지 확인을 하게 만들었다. 수학보다 이게 더 힘들었다.
수학을 왜 공부하는 것일까? 정해진 시험 범위 안에서 누가 실수하지 않고 더 잘 푸는지 평가하기 위해 있는 것일까? 대학을 보내기 위해? 이 기준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 난 이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아직 풀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수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 수학능력으로 해결하기 위함이 아닐까? 난 이렇게 생각한다. 수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지 문제만 풀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역사책이나 위인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 어떤 물건이든 최초 발명할 당시의 상황을 알고 나면 “수학이 이렇게 사용이 되는구나!”라는 자신감과 호기심이 생긴다. 역사책과 위인전기 속에는 ‘최초’의 현장과 수학의 놀라운 활용방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바탕으로 뭐든지 ‘하면 된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르네상스 3대 거장 중의 한명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직업은 정말 다양하다. 우리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천재적 예술가라고 그를 기억한다. 하지만 유명한 레오나르도의 자기소개서에선 그림의 재능은 마지막에 소개했을 정도고, 대부분 군사용 공격병기를 이야기했고 또한 체자레 보르지아에게 인정받아 도시 계획의 총책임자급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지만 체자레가 몰락한 탓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빈치의 직업을 보면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음악가, 공학자, 문학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 식물학자, 역사가, 지리학자, 도시계획가, 집필가, 기술자, 요리사, 수학자 등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엄청나게 많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난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다빈치시대에 풀지 못했던 문제를 수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다빈치가 수학을 활용해 해결해 냈다.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학을 반복해서 풀었기 때문에 수학을 잘 하게 된 것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것은 내가 왜 수학을 하는지를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가운데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수학을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떻게 풀지? 어떤 공식이 필요한지 찾아보자!” 수학문제 백 날 풀어봤자 문제 해결 능력은 늘어나지 않는다. 왜냐고? 배운 수학을 단 한 번도 실전에 활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학문제 풀다가 결국 수학문제에 갇히게 될 뿐!
이유도 모른 채 다 잘하는 아이로 만들려고 하다보면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될 뿐이다. 다빈치가 젊은 시절 오스만 제국(터키)에서 메흐메트 2세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메흐메트 2세가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제작기간에 질려서 돌려보냈다는 식의 설화가 있다. 요즘에는 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그림에 손을 대었던 것이 성인 ADHD의 증상이 아니었나 하는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에 태어났으면 바로 정신병원행이다. 그밖에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에 설치할 다리를 디자인했는데, 당시 기술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기술이었다. 오스만 제국황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이 디자인은 사용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냥 평범하게 나무로 길쭉한 다리를 만들었다. 또 하나의 걸작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그림 그 자체보다 새로운 화법의 실험이라는 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한 인물로, 자신의 그림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림 뿐이겠는가! 그림과 그의 수학적, 과학적 능력과 상상력이 더해진 결과 인체 해부학 스케치, 장갑차, 낫, 풀리, 굴착기, 심지어 비행기, 선박, 전차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발명 작품을 스케치할 수 있었다.
다빈치는 수학을 가장 잘 활용한 천재 중에 천재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수학적 재능을 모두(?) 상실했다. 이제 스마트폰 계산기가 있으니 계산능력은 더욱 퇴화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나만 이렇게 수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런식으로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 아니지, 수학뿐이겠는가!
감사하게도 웬만한 계산은 이제 컴퓨터가 다 해준다. 더 편해졌다. 우리는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만 생각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그런데 계속 수학 문제만 풀게 할 것인가? 어린 시절 어른이 되면 잠수함을 만들고 싶다고 말을 하면 주위 어른들은 ‘네가 잠수함을 어떻게 만들겠어’, ‘그런 걸로 먹고 살 수 있게니’라고 말할 것이다. 당장 돈이 되고 직장을 말해야 제대로 된 꿈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잠수함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 중에 누군가는 최초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면 기회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행운의 여신은 앞머리만 있어 지나가고 나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전진만 강요하는 멍청한 시대에서는 이 말이 유용하다. 진짜로 잡아야 할 기회라면 후퇴를 해서라도 잡으면 된다. 주변을 돌아보자. 기회가 넘쳐날 것이다. 기회도 넘쳐나지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넘쳐난다. ‘불가능’이라는 생각이 들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첫 번째로 했던 사람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의 책을 읽자. 처음이 없다면 그럼 그건 진짜 감사한 일이다. 내가 세계최고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나를 움직이고 무모한 도전은 세상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