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무너지기 전에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by 스피커 안작가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으면 제대로 사고를 할 수 없다. 아프리카 수단에 도서관을 짓기 위해 세계여행을 떠났다가 자금이 떨어져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 상태가 그랬다. 세계여행을 하루하루 버티며 ‘내일은 방값을 구할 수 있을까?’,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니 세계여행 할 때가 덜 힘들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해서라도 돈을 구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구걸하기도 자존심 상했고, 현실적으로 구걸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오니 걱정해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동남아에 있을 때는 물가가 저렴하니 한 끼의 식사와 방값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한국은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쌌다. 밥을 먹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다 부담이었다.



심지어 만나는 사람들마다 언제 다시 나가느냐만 물어보는데 솔직히 미칠 것 같았다. ‘도와 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계속 언제 나가는지만 물어 보는 거지?’ 솔직히 도와달라는 말도 자존심 상해서 못했다. 만약 도와달라고 했다면 충분히 도와줬을 텐데 말이다.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으니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것 같다. 고민만 하고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았고, 그 두려움과 함께 내 통장의 잔고는 0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냥 괜찮은 척 살았다.



150일 정도의 세계여행은 나에게 엄청난 타격이었다. 150일의 시간은 잊혀 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사로써, 작가로써,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만약 소속된 단체라도 있었다면 다시 재기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계여행을 하기 전 4권의 책을 쓰고, 도서관을 짓고, 수많은 곳에서 강연을 했던 그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심지어 그 힘든 세계여행 가운데 집을 짓고, 길을 보수하고, 학교 짓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행동했던 나였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 같았다. 왜 다시 도전할 용기를 스스로 내지 못 했을까? 마음에 근심, 걱정을 치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대신 생각을 하고 실천을 했다면 스스로 극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난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병조, 나 XXX 강연 잡혔는데, 딱 네 생각이 나더라고, 같이 하고 싶은데 같이 할 수 있을까?” 잊혀 졌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희망의 한 빛줄기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강연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기에 최선을 다해서 강연을 준비했다. 사실 그 자리는 내가 필요하지 않았다. 최지훈 작가를 위한 자리였고, 모든 학생들도 최지훈 작가의 책만 갖고 있을 뿐, 그 어디에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먼저 최지훈이 작가가 강연을 했고, 강연을 하는 동안 솔직히 더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심지어 지훈이의 강연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심하게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던 나였는데.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 ‘포커페이스’ 아무도 내가 긴장했는지 몰랐을 것이고, 내 자존감이 바닥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지훈이 강연이 끝나갈 때 쯤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사람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는데, 내가 잘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나답게 강연하자!’ 생각을 바꾸자 머리가 잘 돌아가기 시작했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최고의 강연을 했고, 이번 강연을 통해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멘토가 되었고, 전주에 있는 다른 학교 및 여러 곳에서 강연요청을 받을 수 있었다. 지훈이는 나의 상태를 몰랐겠지만 나를 기꺼이 도와주려고 했던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런데 지훈이가 능력 없는 나를 무조건 도와주기 위해 강연을 같이 하자고 요청했을까? 사실 지훈이는 이번 강연 전에 딱 한 번 본 사이다. 그것도 창원에 있는 한 단체에서 더블강연 강연자로 초청을 받았는데 그때 같이 무대에 썼던 강연자가 지훈이었다. 강연 전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때 동갑인 것을 알았고, 서로의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서로의 강연을 들으면서 서로 동기부여를 받았다. 서로를 대단하다고 말을 하며 다음에 또 같이 무대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나눈 채 헤어진 사이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차 있으니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다. 나의 가치와 재능이 완전 소멸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앞 장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조직화를 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면 돌아오자마자 강연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명확한 목표와 함께 조직화(시스템)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나처럼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게 말이다.



지훈이를 통해서 나는 다시 자신감을 얻었고, 이전 삶보다 더 활기찬 인생이 되었다. 다음은 지훈이가 나에게 같이 강연을 하자고 요청하고 난 후에 쓴 글이다. “오늘 정말 행복한 일이 있었다. 내일은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 소수인원한테 재능기부 강연 하러 간다. 오랜만에 안병조작가님에게 ”너도 갈래?“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 했는데, 안병조 작가님이 본인도 선뜻 가겠다고 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부산에서 전주까지 왕복, 당일치기로 학생들에게 꿈을 나눠주러 그냥 가겠다고 한다! 와...너는 정말 잘 되어야하고 앞으로 분명히 잘 될 거야^^ 그렇게 반년 만에 2번째 안병조 작가와 콜라보 강연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동안 서로 에피소드가 많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강연, 에피소드를 이야기 할 예정인데, 나도 병조 이야기가 궁금하고 병조도 나를 궁금해 한다. 오늘 벤자민 학교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전하니 너무나 행복해하셨고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것 같다며 정말 좋아하셨다! 그렇게 병조와 나는 벤자민 학생 6명 그리고 선생님 한 분을 위해 콜라보로 강연하고 이후 질의응답도 여유 있게 하기로 정했다. 누군가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가슴 뛰게 한다는 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너무나 행복한 하루다. 그리고 내 제안을 흔쾌히 들어준 안병조작가님이 고맙고 또 고맙고 너무나 고맙다! 넌 복 받을 거야. 사랑한다. 친구야."



사실 지훈이는 강연 전 날 나에게 강연 더블 강연을 요청했다. 나는 그만큼 절박했다. 또한 나에게는 하루 만에 강연을 준비할 수 있는 에너지도 있었다. 강연 후 지훈이는 이런 글을 올렸다. “강연~ 전 날 이야기해줘서 준비한 강연 자료는 없어요. 그래도 노련함으로 강연 내내 빵빵 터트렸던 우리 작가님. 특히 나대한 선생님께서(학교 담당자) 제일 많이 웃으셨던 것 같아요. 안병조 작가님 강연은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저렇게 센스 있고 재미있게 할까. 내가 흡수하고 싶어요!”



몇 번의 더블강연을 한 후 지훈이와 카페에 앉아서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20대에는 나 혼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30대가 되니까 그게 아니더라. 우리 함께 성장하자.”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현재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렵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남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실력이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어딜 치고 올라갈지 판단 할 수 있다. 여전히 도전이 두렵다면 최지훈 작가의 책 <그냥, 해!>를 추천한다.



- 당신이 도움을 요청해야 될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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