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공하기 위해 명확한 꿈을 꾸기로 했다
명확한 꿈을 꾸고 올바른 길을 걷는다고 해서 무조건 꿈을 이루는 건 아니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크든, 작든 싫든, 좋든 역경은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왕 역경을 만나면 된다면 빨리 만나면 만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건물을 생각해보자. 기초공사를 하는 중에 실수가 발견되면 복구하기가 쉽지만 3층까지 건물을 지었는데, 실수를 발견하게 된다면 실수한 부분을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역경 없이 빠르게만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나아가더라도 역경을 이겨내면서 올바르게 성장하려고 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을 B와 D 사이의 C라고 말했는데, 인생은 태어나서(Birth) 죽을(Death) 때까지 선택(Choice)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니 그 선택 속에 역경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역경이 없길 바라는 대신 역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서 역경이 시련이 될 수도 있고,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 내 삶에 시련이 없다면 성공이란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패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난 한 달에 겨우 30만 원 받고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내일은 뭐 먹지? 누가 보자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매일 했기 때문에 그 당시는 다음날이 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런데 난 최고의 동기부여가가 되고 싶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일을 했다. 윈스턴 처칠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라고 말했듯 난 30만 원이라는 역경에 맞서 싸웠고 그것을 견뎌냈다. 그 결과 내 꿈은 접히지 않고 활짝 펼쳐질 수 있었기에 강사와 작가로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변에 나와 같은 길을 가던 사람 중에 어렵다고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이 많았다. 나도 역경을 만났을 때 지금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면 역경을 역경으로만 생각고 포기했을 것이다.
신이 나에게 역경을 주신 이유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이 아니라 역경(경험)을 통해 지혜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숲에서 가장 강한 나무는 폭풍우를 이겨내고 다른 나무들과 싸우는 등 온갖 역경을 이겨낸 나무다. 그 나무는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냈을 것이다. 나도 그 나무처럼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나면 된다. 이제는 역경을 만날 때마다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만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풀리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었다. 세계적으로 10만 명 중에 1명 걸리는 희귀병이다. 길랑바레 증후군에 걸리면 먼저 말초신경에 마비가 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온 몸이 저리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걷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안면마비, 호흡곤란 등이 일어난다. 세계여행도 하고 일주일에 2번 이상 축구를 즐겼던 내가 하루아침에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처음 며칠은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너무 원망스럽고 지금 내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저녁만 되면 통나무가 된 듯이 온몸이 굳었고 온 몸에 저린 현상이 심해져서 밤마다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혹시 이러다가 죽지는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2주 정도가 되었을 때 내가 길랑바레 증후군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는 “100% 회복할 수 있는 병이에요. 재발 가능성도 거의 없고요.”라고 말해줬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함성을 질렀다. ‘100% 회복될 수 있다면 이 순간(질병)을 즐기자!’ 그 순간 신기하게도 웃음이 나왔고 나를 하루라도 더 빨리 회복하기 위해 재활훈련을 열심히 받았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쉬지 않고 혼자 몸을 열심히 움직였고 끊임없이 회복된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결과 나의 회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의사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회복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나의 정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인했다. 역경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 더 이상 역경은 나에게 역경이 아니었다. 믿음과 긍정의 힘 때문이었을까? 2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는 거의 회복했다. 축구 한게임 정도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 나랑 비슷하게 길랑바레 증후군에 걸렸던 사람들의 소식을 들어보니 이제 겨우 눈만 뜨는 사람도 있었다. 의사도 회복하는데 1년 6개월 정도 걸린다며 마음먹고 있으라고 했었다. 그런데 2개월 뒤 의사는 “한 달만 지나면 약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난 혼자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내가 길랑바레를 긍정적으로 이겨낸 모습을 통해 길랑바레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길랑바레를 이겨내고 있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렸고 전국 각지에서 길랑바레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이 내가 올린 영상을 보며 힘을 많이 얻었다며 자신도 적극적으로 잘 이겨내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경을 만나면 역경에 무너진다. 역경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역경 없이 무조건 안락하고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도 단 한 번의 역경도 없이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역경과의 싸움을 통해 단단해지지 않았다면, 길랑바레가 왔을 때 나 또한 한순간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난 한 방에 무너져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실패를 몇 번 맛보고 난 후 난 막연하게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목적이나 계획도 없이 무작정 잘 되기만을 바라는 것인데 내가 길랑바레를 빠르게 이겨낸다는 목적도 계획도 없었다면 어떻게 길랑바레를 치료할 수 있었을까? 길랑바레뿐만 아니라 어떤 꿈이든 막연하게 꿈만 꾸고 있다면 어디까지 가야 성공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역경을 통해 배운 건 목표 없이 더 크게, 더 높게만 외치며, 정신없이 전진하는 그 자체가 역경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나니 내가 싸워나가야 할 존재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떠한 역경이라도 충분히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결과 역경은 더 이상 나에게는 역경이 아니었다.
산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아는가? 살아있는 존재는 계속 움직인다. 정지해 있는 상황에서도 수많은 역경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뇌는 쉴 수가 없다. 이 싸움이 쉽다면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루겠지만 이것이 쉽지 않기에 일부만 꿈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어느 자리든 꿈을 이룬 사람은 마주한 역경과 싸워 이긴 사람들이다. 역경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보상으로 받는 것이 꿈이라는 선물이다. 꿈을 성취해본 사람은 계속 도전을 할 것이고 도전 중 다시 역경을 만났을 때는 그 역경을 웃으면서 이겨내고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다.
나폴레온 힐 박사가 헨리 포드의 수석참모에게 그의 성공원칙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포드 씨 같은 사람들과 마주쳐서 그들에게 나를 알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뭔가 하고 싶을 때는 나를 불러주기를 바라죠.” 난 이 대답을 내 가슴속에 새김으로 인해 더 이상 기회가 찾아오지 않아 어렵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 마음이 역경이었다. 오히려 먼저 달려가서 기회를 맞이한다. 그 기회가 나에게 역경이 될지언정 난 계속 꿈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역경아 덤벼라! 너를 이기고 새로운 배움을 얻고 한 뼘 더 성장해서 제대로 꿈 좀 이뤄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