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합시다!

호기심 공부법

by 스피커 안작가

여덟 번째로 출판 계약을 했던 출판사 대표가 부산에 온다는 소식을 정효평 작가한테 들었다. 여덟 번째 책은 글쓰기와 관련된 책으로 최용규 작가와 정효평 작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기획해서 쓴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갑자기 출판사 대표가 부산에 온다는 소식에 우리 셋은 설렜었다.


출판사 대표는 우리 셋과 1시간만 대화를 하고 다시 본인이 살고 있는 장수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는 법. 내가 한 시간 지각하는 바람에 출판사 대표의 계획은 틀어졌다.


출판사 대표는 내가 커피를 시키자마자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고 커피를 입에 데지도 못하고 테이크 아웃으로 변경을 하고 카페에서 나왔다. 출판사 대표는 이렇게 된 거 부산에서 하룻밤 자고 갈 테니 어디 가서 술 한 잔 하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 셋은 몇 년째 알고 지내지만 단 한 번도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없다. 만나면 몇 시간 동안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같이 책 쓸 만한 재밌는 주제가 없나?’, ‘어떤 방법으로 글쓰기 코칭을 같이 진행해보지?’ 이런 이야기만 나눌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재미없는 주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재밌는 주제였다.


그런 우리에게 출판사 대표가 술자리를 제안해서 우리는 멘붕이었다. 술을 마시지 못해서 온 멘붕이 아니었다. 술 마시러 어딜 가야 될지 몰라서 온 멘붕이었다. 우리는 부산 온천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먼저 출판사 대표가 하루 밤 묵을 모델을 먼저 잡고 난 뒤 우리는 돼지국밥 집으로 갔다. 돼지 국밥 집에서 수육 대자를 시키고 출판사 대표는 소주를 시켰다. 여기서 출판사 대표는 술 한 잔 하며 우리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날은 정말 출판사 대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이 없나 보다. 최용규 작가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그가 식사를 하는 시간이 3~5시 사이다. 그런데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고 돼지국밥 집에 왔을 때가 4시였다. 최용규 작가는 배가 고팠는지 공기 밥을 시켰고 나도 먹다 보니 배가 고파서 공기 밥을 시켰다.


그러자 출판사 대표는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밥 먹을 때 할 이야기가 아닌데...”라고 말하며 빨리 먹고 진짜 술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술집으로 이동할 것을 제안했다.


솔직히 이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책의 흐름이 바뀌나?’, ‘코로나 19로 힘든 시기니 출간 시기가 무한정 연기가 되나?’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우리의 존재가 궁금해서 코로나 19 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만나로 부산까지 오는 모험을 했다는 생각만 했다. 우리는 얼른 수육을 먹고 호프 집으로 이동을 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출판사 대표는 쉬지 않고 아재 개그를 했다. 아재 개그 당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듣는 사람은 재미가 없고 하는 사람만 재미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솔직히 그가 한 개그는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어떤 개그를 했는지 진심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서 그의 이전 이야기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의 개그가 없었다고 뇌를 속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호프 집에 오자마자 우리는 맥주를 주문했고 맥주가 나오자 출판사 대표는 건배를 제안했다. 건배 후 출판사 대표는 500cc 맥주를 그대로 원 샷을 했다. 그리고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죄송합니다. 1시간 이야기하고 다시 장수로 가려고 했는데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분들이라서 죄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쉽게 입이 떨어지지가 않네요. 그래서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절대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아서 술 한 잔 하고 했습니다.” 불안하게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난 준비가 되어 있어! “올해 출판을 못 하겠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쯤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출판 계약을 파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세 명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한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가 잘 못 했으니 이미 드렸던 계약금은 돌려받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계약을 파기해주셨으면 합니다.” 난 솔직히 코로나 19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래도 50만 원은 건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이상 책 한 권 내서 50만 원 벌기도 힘든 나라에서 책도 나오지 않았는데 50만 원이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그래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왜 계약을 파기해야만 하는지! 코로나 19로 파산위기까지 오셨다고 한다. 원래 매출이 아동서적 90%, 일반서적 10%였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일반서적은 거의 안 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출판사는 출판사 대표가 내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그 주제에 적합한 작가를 찾아서 출간 제안을 먼저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원고를 받고 ‘이 주제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갖고 계약을 한 책이 우리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힘들어지자 출판사 정체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생각해 본 결과 출판사 방향과 우리 책이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경솔했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는데 뭐 어떻게 하겠는데 계약 파기를 해줘야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봤다. “제가 파기를 안 해주면요?” 그럼 억지로 책을 내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내면 출판사가 신경을 써서 책을 내줄까? 둘 다 손해다. 개판으로 나온 책으로 인해 출판사뿐만 아니라 작가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다.


그 뒤로 맥주를 몇 잔 더 마신 뒤 우리는 각자를 축복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생각을 했다. ‘돈도 안 되는데 이제 책 안 쓸란다.’ 이때 출판 서적에 대한 호기심이 증발해 버렸다. 호기심이 증발해 버리니 더 이상 글 쓸 소재가 내 뇌에 0.00001%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했었다. ‘그래도 재밌는 경험 했다. 언젠가 다시 책을 쓰게 된다면 이 이야기를 쓰게 되겠지...’ 그 날이 3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다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이 한 질문이겠지만 그 단 하나의 질문이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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