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렙돈 세계여행 중 111일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숙소에서 오후 묵상
2019년 2월 16일 토요일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 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기 15:20-27 KRV
홍해 사건 이후 사흘 만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돌아갔다. 실제적인 애굽이 아닌 영적이 애굽으로 말이다. 육체가 고달파지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바로 원망이 튀어 나왔다.
그 짧은 순간 원망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원망이 나왔던 입술로 기도하며 간구 할 수는 없었을까? 결국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은 똑같고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은 똑같은데 부정하며 주님을 원망하는 것 대신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갔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해주신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다. 가장 먼저 내린 법도는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며’이다. 청종이 무슨 뜻인가? 이르는 대로 잘 듣고 좇음을 말한다. 믿음은 내가 주를 믿나이다라고 일방적으로 내가 주님께 고백하는 행위가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명령하실 때 바로 충성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믿음 좋아보이는 행위들이 아니라 교회에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주님의 명령에 바로 반응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그 다음 명령은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행위 주체자의 옳다고 여기는 행위가 아니라 행위를 받는 주님의 의가 드러나야 의로운 행위인 것이다.
이어서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께서 정한 십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눈이 어두운 밤에라도 귀를 기울여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명 지키는 일에 어떤 변명도 필요없다.
마지막으로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인간으로서 모든 규례를 지키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너무 무리한 명령을 하신 것일까? 홍해에서 진정으로 출애굽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홍해 바다에서 완전히 내가 죽고 주님의 영으로 깨끗함을 받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주님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주님의 규례를 모두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애굽사람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으로 그들을 심판하시고 시험을 하셨다. 애굽사람들은 그 시험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승리하지 못한 이유는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하셨을까? 위에 말한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를 시험하실 이유도 없고 저런 질병, 고통이 없더라도 온전히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오늘 묵상을 하며 이런 생각이 든다. 같이 고민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나는 그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