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렙돈 세계여행 중 113일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숙소에서 오후 묵상
2019년 2월 18일 월요일
“모세가 그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편을 판단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실찌로다 그대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 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출애굽기 18:15-23 KRV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한 자이다. 모세의 능력은 하나님으로 나왔다. 당시에 가장 의롭고 하나님을 두려워한 자였다. 그 당시 어떤 사람도 이 사실은 인정했을 것이다. 그런 모세에게 장인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한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분명 모세는 잘잘 못을 가리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모세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율레와 법도 아래서 판결을 내리고 있는데 말이다.
율레와 법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당연 모세인데 말이다. 이런 모세를 향해서 장인 이드로는 분명히 선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히 모세가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장인이 봤을 때는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모세 혼자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는 더 중요한 일!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리는 역할에 집중을 해야지, 이스라엘 백성의 잘잘못을 판결하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율레와 법도를 잘 가르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모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세는 하나님한테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조언에도 귀가 열려 있었다. 귀가 열려있었기에 장인의 말을 경청하고 그대로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유익과 재산을 늘리기 위해, 편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장인은 말한다.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면 재덕 즉, 재주뿐만 아니라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을 가진 자를 백성 가운데 세우라고 말한다. 우리가 일을 할 때 가져야 하는 첫 번째 덕목은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이다. 우리는 스펙과 실력만을 중시하고 있다. 스펙과 실력은 그 일을 하기 위해 당연한 것 중에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어질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재판관이 되거나 사회 중요한 일을 맡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행실을 가진 자는 무슨 말인가? 행실을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을 말한다. 말만 번지르르하는 재판관을 뽑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실제 삶에서도 재판을 할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겸전한 자란 여러가지를 완전히 갖춘자를 말하며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자는 그 분을 두려워하게 되있다. 어설프게 아는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척하며 그를 이용하는 것이지 진짜로 믿는다면 그분의 뜻을 지키기 위해 거룩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하나님 앞에 진실되고 기만함이 없어야 된다. 그때 비로소 눈에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도 진실되고 기만해지지 않을 수 있다.
정의롭지 않은 일을 안한다고 해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자를 미워하고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한다. 미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겉으로는 그럴수도 있죠라고 포장하고 뒤에서는 욕을 하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들의 불의가 드러날 수 있게 미움을 표시할 수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자라야지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자연스럽게 타인을 비판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어떻게 될까? 내 죄가 드러나고 내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이것보다 더 큰 죄는 없는데 내가 누구를 맘대로 평가하고 비판을 하겠는가?
세상과 주변을 재판하기 이전에 말씀토대로 자신을 바라보자. 자신의 더러움이 드러나서 타인의 더러움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재판관이 있다는 건 사실 좋은 것은 아니다. 서로 판단하고 사기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법이 많아지는 것 또한 다양한 사람을 심판할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이 라고만 생각하지 말자. 우리가 얼마나 죄악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법이 많아져도 결국 그 법을 피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진다. 법을 없을수록 괜찮은 사회다. 인간이 만든 법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법만 이땅 위에 우뚝 설 때 우리 사회는 천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