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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 Sep 27. 2019

남편이 밉다면 소금밥을 먹여라?!

시어머니가 전수해 준 삶의 지혜 편

갑자기 취재하기로 한 아이템이 엎어지고,

신경은 누군가 툭 건드리면 끊어질 것 같이 팽팽한데....

그 순간 정신없이 울리는 핸드폰.


핸드폰 화면에 굳이 반가울 것 없는 세 글자가 뜬다.


어.머.니.       


잠시 망설이는 중에도 핸드폰은 집요하게 요동치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마지못해 받았더니 다급하게 들리는 목소리.   

  

“김치 먹어 봤니?”

“아... 아직요..”

“아니, 왜 아직 안 먹었어? 김치 준 지가 언젠데... 밥 안 해 먹니?”  

  

내 일이 안 풀리고 마음이 복잡하니 그냥 하는 말도,

귀한 아드님 밥상도 안 차려 주고 뭐하냐는 타박으로 들린다.     


“아.. 그이가 요 며칠 계속 회식이라 집에서 저녁을 통 못 먹어요...”    


일단 남의 편(=>남편)에게 슬며시 책임을 미뤘다.  

나중에 해도 될 말을 굳이 일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숨넘어가듯 전화하는 그 오묘한 심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머니와 그 잠깐의 통화 중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과연 방송은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입술은 바싹바싹 마르고 얼굴은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진통제를 사탕 까먹듯 2알이나 먹었지만

머릿속은 아직도 바늘로 찌르듯 욱신거렸다.     


주말 이후 지금까지 집에서 밥을 먹을 만큼의 여유로움 따위도 없었건만...

나에게 다짜고짜 첫마디가 김치 먹어 봤니? 라니....    


“아이고 이 더위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고... 지칠 텐데...”    


남편 회식 때문이라는 데도,  시어머니는 그마저도 내 탓 인양 걱정이 늘어졌다.

제발 할 말만 하고 빨리 끊어줬으면 하는 내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니 네 준 김치가 짜더라...

오늘 당장 집에 들어갈 때 무를 하나 사서 뭉턱뭉턱 잘라서..

김치 사이사이 박아 넣어라..”    


‘제가 왜요? 전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퇴근할까 말까 하는데요.  

무요? 그때는 파는 곳도 없어요. 편의점에 생 무를 파나요?

그렇게 다급한 일이면 제시간에 퇴근하는 아드님에게 시키세요...‘    


머릿속에서는 시어머니의 그 경우 없는 말을 되받아치고 있었고

하마터면 그 말이 목구멍을 넘어 올 뻔했다.

하지만 억울함은 가슴속에 꾸역꾸역 눌러 놓고,

난 그저 담담하고 묵묵하게 대답했다.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기에...    


“네,...”    

     



“거 봐. 칼라바가 나가는 거 내 방송 인생에 본 적이 없어.

끝까지 물고 늘어지니까 아이템 새끈 한 거 잡혔잖아.

너처럼 그렇게 물렁하게 했다간 이 시청률 전쟁에서 어디 이겨 먹겠니?

너, 나 아니었으면 내일 시청률도 곤두박질이야. 다 내 덕인 줄 알아.”    


방송 전날까지 좀 더 센 거를 외치며,  

나를 말려 죽일 작정이던 프로그램 책임피디의 공치사가 늘어지고

난 생방송 후에 거의 초주검 상태로 겨우 집으로 돌아갈 자유를 찾았다.     

며칠 만에 내 집에서, 푹신하고 안락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기회인가...

오로지 침대에 눕는 그 순간만을 생각하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금쪽같은 아들은

며칠째 밤샘을 한 와이프가 궁금하지도 않은지

소파에 누워 개그 프로그램이나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고,

나의 주방은 불시 검문에 나선 시어머니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김치통에 무를 썰어 넣지 않은 나를

발칙하고 싸가지 없는 며느리라고 괘씸해하며 한창 무를 썰고 있는 중이었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와 있는 상황.

아....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순간, 빨래 줄에 널린 속옷을 시아버지에게 들킨 것 같은 화끈거림이

내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어떻게 내가 없는 집에서, 나에게 한마디 양해도 없이 냉장고를 열어 곳곳을 검사하고 간을 보고...    

순간 하얗게 된 내 머릿속과는 달리 얼굴이 화끈거렸다.

   

‘뭐하시는 거예요, 어머니?’     


곱게 말이 나갔을 리 없다.

그리고 그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지금도 그 당시의 장면은 슬로 모션으로 내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시뻘건 배추김치를 한 주먹 손으로 집어서는..

내 입 속으로 그 김치 덩어리를 꾸역꾸역 쑤셔 넣는 것이었다.     


“너 이 년... 니가 먹어봐... 이게 짜? 안 짜?

어디 이 짠 거를 내 아들 먹여서 죽이려고 해?

내 아들 죽으면 니 년이 책임 질 거야?”    


난생처음 ‘년’이라는 욕을 들었던 나는

그 ‘년’이라는 단어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가슴속에 콕콕 박혔다.

실제 파편에 찔린 것처럼 따갑고 아팠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순간 시어머니의 알토란 같은 삶의 지혜를 깨닫고 말았다.

남편이 미워 죽겠을 때는 그의 밥에 소금 한 수저를 푹 떠서 넣으리라~    

짠 김치로 남편을 독살할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미리 알았더라면,

그와 가사 노동을 빌미로 힘겨루기를 하며 지겹게 싸울 때마다

소금을 사용하는 현명함을 보였을 텐데...    


나이는 내가 훨씬 젊었지만

시어머니의 손아귀 힘은 당신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드셌고,

미처 김치 테러를 하는 손을 밀쳐 낼 새도 없이

내 입가는 김칫국물로 범벅이 되면서 마치 피에로의 입술이 떠올랐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내 입 속으로 김치를 구겨 넣고 있는 시어머니의 손을 밀쳐 내면서도,

난 배운 여자의 품위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뭐하시는 거예요? 교양 없이...”    

라며 시어머니의 속을 긁는 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사실 나의 멘트처럼

나의 멘탈도 품위를 지키며 평정심을 유지한 건 아니었다.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김치 다발로 따귀를 맞는 것만큼의 치욕에는 못 미쳤겠지만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당혹감을 꾹 참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그 어떤 나쁜 역할도 자처하지 않으려 했던 남편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양비론을 펼치며 그 순간을 구경만 했을 뿐이었다.     


그도 미쳐 그때는 몰랐으리라...

그게 누구 하나의 편을 드는 것보다 더 나쁘고 비겁한 일이라는 것을.     


시어머니가 김치 테러를 한 그 날,

기어이 그 큰 무를 김치에 꾸역꾸역 박아 넣고는

시어머니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 거리며 돌아갔다.    

시어머니의 만행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나는...

그날 소심한, 하지만 내 스스로는 아주 통쾌한 복수를 했다.

김치에 꾹꾹 박아 넣은 무를 다시 다 꺼내서

쓰레기통에 미련 없이 아주 깔끔하게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십여 년도 훨씬 지난 지금, 난 아직도 그때의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있을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흔하디 흔한 말처럼,

한 남자를 만나면서 맺어진 인연이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에도 굳은살이 배이면서

이제는 서운할 법한 말도 부당하다 생각되는 말도

덜 상처 받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더 솔직히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어쩔 수 없다면 좋은 척이라도 해보려는 여우 같음과 포기와 이런 것들이

방어막이 되어준 것일 것이다.    


여름이 다 지나기 전,

이미 김장 김치통이 비워진 우리 집 냉장고를 보며.

나는 그 날 그 김치 테러를 한 시어머니께 애교 섞인 문자를 보낸다.     


“어머니, 김치 너무 맛있어서 벌써 다 먹었어요~

혹시 묵은지 남은 거 더 없을까요? 사 먹는 김치는 너무 맛없어요.”     


그리고 문자를 보내며 생각한다.

그 시절, 내가 지금과 같았다면 난 그 김치로 화장을 하는 기묘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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