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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 Sep 27. 2019

엄마의 반찬엔  왜 꼭 머리카락이 들었을까?

늙는다는 건

건강 밥상의 대명사, 엄마의 집 밥을 먹고 토했다?

     

어릴 적 우리 형제들은  잘 익은 묵은지에

기름기가 적당히 섞인 돼지고기를 뭉턱뭉턱 잘라 넣고

푹 익혀낸 엄마표 김치찌개만 있으면

밥 한 공기씩은 뚝딱이었고

그 진한 국물에 김을 살짝 적셔서

밥에 얹어 먹으면 그건 천상의 맛이었다.

     

엄마의 밥상은 반찬을 작은 접시에 제각각 덜어 정갈하게 담아 낸

요즘의 깔끔한 밥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난 엄마의 그 투박한 밥상이 좋았다.  

     

그런 내가 중학생 때 쯤,

엄마의 정성어린 밥상을 받고 토한 적이 있다.

한참 맛나게 먹다 갑자기 입 안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뭔가 목 저 안쪽에 걸리는 듯한 느낌에 헛구역질을 하다  

혀에 걸리는 그 정체 불명의 것을 손으로 쭉 당겨보니

엄마의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따라 나오는 것이다.

     

옆 사람이 토하는 것만 봐도,

아니 그 소리만 들어도 함께 토하는

내 유난스러운 비유 덕에

난 그 날, 머리카락을 입에서 꺼내고는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속에 것을 모두 개어 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문 좀 열어봐봐

     

엄마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걱정했고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다 냈던 기억이 있다.   

     

아 더럽게 음식에 왜 머리카락이 있어?”

     

나에게 윽박지르며 그럴 수도 있지 그냥 먹어.’라며

소리를 지를 법도 한데 엄마는 그날 많이 미안해했다.  

     

어쩌다 거기에 머리카락이 들어갔다니...

  밥 더 먹어...다 토 했잖어..”

     

머리카락 하나에 미안해하던 엄마는

다시 찌개를 끓여 주겠다며 나를 달랬지만...

     

됐어. 속 울렁거려 죽겠는데 뭘 또 먹어? 싫어”  

     

그 머리카락 하나에

입맛, 밥맛, 없는 맛까지 다 똑 떨어진 나는

남은 성질을 부리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매사에 그렇게 유난하게 깔끔을 떠는 엄마가

왜 그렇게 음식에는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는 것일까?

내 기억 속 엄마의 반찬엔

늘 머리카락이 한 두 올씩 들어가 있었다.

     

운이 좋으면 반찬을 집을 때 골라내기도 하고

아니면 이미 입 속에 들어간 반찬속에서

머리카락의 그 불편한 질감을 느끼고 끄집어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속이 울렁거리고 영락없이 토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머리카락이었을지라도...

     

그땐 몰랐다.

왜 그렇게 엄마의 반찬엔 머리카락이 꼭 들어가 있었는지,

다만 엄마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생관념이 떨어진다고 미루어 짐작했을 뿐이다.

     


내가 만든 음식에 머리카락이 있다고?? 

     

엄마, 입 안에 뭐가 있어...”

     

딸아이가 밥을 먹다 자꾸 헛구역질을 하며

입 안에 밥을 다 뱉어낸다.

그리고 그 뱉어 낸 음식엔 나의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엄마의 밥상에 들어있던 머리카락이

내가 만든 음식에도 떡 하니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랬다. 내가 그 때의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 반찬에 머리카락이 들어가 있는 것은

위생관념 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20대 때 나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눈치 아닌 눈치를 봐야 했다.

머리숱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에

내 머리를 매만지는 디자이너는 볼 멘 소리를 가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 드라이 하는데 만도

보통 사람들의 배 이상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난 찬란하게 젊은 시절에도

웨이브는 꿈도 꾸지 못했고 늘 매직만 했었다.

단정한 생머리여도 내 머리 숱은 터져 나갈 듯 했기에.

     

그런 내 머리숱이 이제는 굴욕의 머리숱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출산을 한 여성에게는 통과해야 하는 관문처럼 일상적이었으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금에도

나의 머리카락은 쉼 없이 빠지고 있다.  

     

가을날 낙엽보다도 더 힘없이 우수수 떨어지며

집의 모든 공간을 구분 없이 날아다니고 있는 나의 머리카락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음식을 만들 때 어디든 날아 들어갔다.

     

그러다 남편이 먹던 반찬에서,

아이의 입 속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오게 되면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것 마냥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시절 우리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위생 관념이 부족해서도 부주의해서도 아닌,

조심한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서, 호르몬이 변하면서

수 없이 빠지는 머리카락의 행방을 일일이 체크하지 못했을 것이다.


    

     

샌들에 양말 신는 남자, 내 남편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내 몸이 늙고 있다는 것을

그저 늘어지는 피부나 자꾸만 고개를 내미는 흰 머리에서 느끼게 될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기대와 달리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는 내 음식속의 머리카락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남편처럼 말이다.

     

여보, 양말 어딨어?”

     

샌들과 슬리퍼만 챙겨 간 여행지에서 남편이 양말을 찾는다.

양말 자체를 챙겨 가지 않은 나로서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양말은 왜? 설마 샌들에 양말을 신으려고?”

     

.. 이게 바로 패션 테러리스트의 대명사,

샌들에 양말을 신는 남자와 내가 살고 있구나...

     

아니 누가 샌들에 양말을 신어? 패션이라고는 단 1도 모르는 인간이야.

발에 땀이 차서 자꾸 발이 까지고 쓸려서 아프니까 그렇지.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그가 양말을 신으려는 이유를 듣기 전까지

난 샌들에 양말을 신는 중년 아저씨들의 패션이 무작정 부끄러웠었다.

     

내가 기겁을 하자 그는 곧 포기하고 차라리 발이 아픈 쪽을 선택했지만

왜 중년 남자들이 샌들에 양말을 신으려 하는지 지금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땀구멍이 열린 듯 땀을 흘리는 중년들은

샌들에도 양말을 신어야 겨우 아프지 않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식당에서 물수건을 옆에 두고 수시로 땀을 닦으며 음식을 먹는

배불뚝이 중년 아저씨들이 참으로 지저분하고 예의도 없다고 느꼈던 내가...

이제 매운 음식이라도 먹을라치면

진심 머릿속에서부터 땀이 솟구쳐  당황하기 일쑤고...

     

엄마들 속옷은 왜 이리 아줌마 같은 거야? 예쁜 레이스도 많은데...라며

아줌마들의 패션 감각을 무시했던 내가

이제는 가슴골에서부터 솟아나는 땀 때문에 인견 속옷을 찾아 헤매면서

내가 늙어 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옛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저 아줌마 아저씨들이 부끄러움이 없어서 라고 단정 지은 모습들이

사실 그들 나이가 만들어 낸 열악한 몸의 환경을 극복하고자 했던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나도 중년이 돼 보니

그 시절 우리 엄마와 그리고 아줌마 아저씨들을 오해했던 일들을

뒤늦게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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