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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 Sep 27. 2019

공부가 MONEY? 사는 게 뭐니?

매일 쓰는 반성문

며칠 전, 등교하기엔 이른 시간, 아이는 아직 곤한 잠에 빠져 있었고

난 여느 때처럼 아이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맘 카페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됐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갑론을박도 많고

실시간 검색어까지 장악하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영상을 찾아봤다.     


“엄마, 왜 울어? 어디 아파?”     


영상을 보던 내가 훌쩍거리자, 아이가 놀라서 깼나 보다.     

방송에서 본 아이들은 무려 34개의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 아이로 따지면 11개에서 12개 정도다.  

물론 방송이 직업인 내가 아니더라도

그게 과장된 수라는 건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눈치챌 수 있다.

십 여분 남짓 하는 학습지 숫자까지 합쳐진 개수니까.  


하지만 그 잠깐의 학습지 수업을 위해서

아이는 숙제를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도 필요하다.

결코 십 여분 남짓으로 끝나지 않는다.     


화면 속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학습지 수업과 숙제 속에서 허우적댔다.

심지어 주말에도 아이들은 하루 종일 밀린 숙제를 해야 했고,

세 아이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고 숙제와 공부를 체크해야 하는 아이들의 엄마도

곧 쓰러질 것처럼 지쳐 보였다.     


도대체 사교육 1번지라는 대치동 아이들은

어떤 커리큘럼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본 그 방송은

어쩌면 나와 내 아이의 자화상처럼 쓰리고 아팠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고 화창한 게 밖에서 놀기에 딱이다. 그치?”    


등굣길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던진 내 말에

내 아이는 오히려 기분이 상했는지 시니컬한 반응이다.    


“오늘 수영까지 갔다 오면 6시 반인데... 밖에서 어떻게 놀아?”    


그저 기분 좋자고 한 소리에 볼멘소리로 답하는 아이의 예민함이 거슬렸지만,

사실 아이 말이 족족 맞긴 했다.

등교 이후부터 방과 후 수업과 학원 스케줄까지 오늘 소화해야 하는 것만 4개.

그것도 6시 반까지 아이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날 때쯤, 내가 학원 가방과 간식을 챙겨서 학교로 가면

아이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길거리에서 간식을 먹어야 하고,

또 셔틀에서 내리면 수영장 가방으로 바꿔서 바로 수영장 버스를 타야 한다.      


그리고 집에 오면 저녁도 먹어야 하고 영어 숙제도 해야 하고,

수학 문제집도 서너 장 풀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잘 시간이다.   


하루 종일 학원 여기저기를 오가며 바빴던 아이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한 지

그제야 조금 놀다 자면 안 되냐고 묻는 게 초등학교 저학년의 일상이다.     


운 좋게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면

놀이라고 해야 독서를 맘껏 한다든가 블록 놀이가 고작이긴 해도

아이에겐 그 시간이 그리 달콤한가 보다.  


표정부터 달라져 있고, 설거지하고 있는 내 곁으로 와서

책 내용에 대해 조잘조잘... 귀에 피가 날 지경으로 수다가 끝없다.     


대치동 아이들이 대부분 10개 이상씩 하고 있다는 사교육,

하지만 내 아이가 하고 있는 사교육은 7개 정도다.

그저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켜주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내가 고집했던 건 영어와 수학이 전부다.     


내 아이의 스케줄 또한 빡빡해 보이지만

사실 대치동은커녕 웬만한 교육열이 높은 엄마들의 열정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네 나이엔 노는 것도 공부야”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아이에게 잠시의 멍 때리는 여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이에게 다양한 상상을 하며 커 나갈 자유와   

맘껏 놀 권리를 빼앗고 있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반성은 잠시였고, 오늘 아침에도 난 또 끝없는 검색의 늪에 빠져 있었다.

학교에서 온라인 알림장으로 보낸 영재교육원 신청 안내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찾다 보니 대학 부설 영재교육원부터 교육청 소속 영재교육원까지 다양했고

그러한 영재교육원을 들어가기 위해 따로 학원까지 다니기도 하고 문제집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영재교육원에 합격한 아이의 수업 과정을 글로 읽고 보니,

뭔가 아이에게 열어 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길을

나의 비루한 정보력으로 제대로 열어 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한 때, 내 아이가 영재까지는 아니라 해도 남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가 아직 돌도 되기 전,

불편한 게 있으면 아기들은 으앙~ 울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때때로 소리 없이 눈물방울만 쪼르르 흘리는 걸 보며,

감수성이 남다른가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대여섯 살에도 자기 스스로 감정을 잡으면

눈물을 뚝딱 흘리는 걸 보며 연기자의 재능인가도 생각했고,

한글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간판을 띄엄띄엄 읽는 걸 보며 기함하기도 했다.    


지금도 아이의 뛰어난 기억력과 남다른 말재주와 어휘력을 보며

잘 이끌어 주면 자신이 원하는 걸 좀 더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텐데,  

내가 그걸 못해 줄까 봐 강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어디 정답이 있을까?

똑같은 아이가 없듯,

누구에겐 맞는 교육법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난 오늘도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는 나의 불안과

육아 서적에 나오는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길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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