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낙 Jun 03. 2023

오늘을 욕심낸다.

아이들이 쑥쑥 자란다.

계절은 언제나 아쉽게 지나간다. 오늘은 이걸로 충분하다. 욕심 내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은 오늘 감동한 것만으로도 좋은 법이니까. 그것이 '만남'이다. 
<계절에 따라 산다>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티라미수 더북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첫째의 나이를 듣더니 “첫째는 곧 대학생이 되겠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아이들이 금세 큰다”라고 말을 보태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첫째의 청소년기가 실감이 났다.

 

첫째는 열일곱 살이다. 동생이 여러 명이다 보니 제 나이보다 큰 아이로 다가왔다. 28개월 때 한 명의 동생, 다섯 살 때 동생이 두 명, 초등입학 때는 동생이 세 명이었다. 넷째가 동생으로 힘들어할 때면, “오빠가 네 나이 때는 동생이 세 명이었어.”라며, 큰오빠 포스를 뽐낸다. 그 말을 곰곰이 듣고 있다 보면, 본인도 돌봄이 필요한 유아였을 때, 또 다른 돌봄이 필요한 동생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때도 나름 아이의 입장에 서서 세밀하게 아이를 돌보았다지만, 놓치고 지나간 것이 많아도 너무 많을 것이다. 어느새, 키도 집에서 제일 큰 진짜 큰 아이가 되었다. 이렇게 성장의 계절이 아쉽도록 빠르게 흘렀다.


지난주에, 아들 셋과 에버랜드를 다녀왔다. 갑자기 추진된 일정이라 열일곱, 열셋, 28개월의 조합을 가벼운 아들들과의 소풍 정도로 생각했다. 아이들이 무서운 놀이기구는 타지 못하기에 비슷한 동선으로 움직이면 되겠다 싶었다. 내 바람대로 형들이 어린 동생의 흥미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평온한 출발을 하였다. 동물들을 가깝게 보여주기 위해 서로 아가를 안아주고, 유모차를 밀어주었다. 나보다 스마트한 세상을 잘 살아가는 첫째가 스마트 줄 서기와 관심 공연일정들을 살펴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그러나 환상의 나라가 환장의 나라로 변화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사춘기의 터널을 거의 끝나는 첫째와 사춘기 터널의 입구로 향하는 셋째, 유모차를 벗어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섯째와 많은 인파를 뚫고 다니는 것은 욕심이었다.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섰는데 낮잠 시간까지 겹치니 아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잠은 오지만 자지 않으려 하고 조용하게 잘 수도 없으니 더 흥분된 몸짓이었다. 아가에게 집중하며, 판다 월드에 들러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다 놓쳤다. 첫째가 에버랜드에 와서 하고 싶었던 것을… 유모차로 가파르게 판다 월드까지 다다르자 어제부터 장미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정말 인지하지 못했다.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에 좀 더 있다가도 되니 장미원을 들러가자고 했다. 이제 셋째가 일주일 걸을 양을 하루 만에 걸었다며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아가의 잠투정에 셋째의 몸 투정까지 화르르 타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조건이었다. 마음을 꾹 눌렀다. 셋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하고, 첫째의 오늘을 누리도록 장미원으로 이동하였다.


첫째가 6학년쯤 되었을 때, 살면서 억울했던 일을 이야기했었다. 다름 아닌, 셋째가 기름 뚜껑을 열어 바닥에 흥건히 쏟았을 때나, 압력밥솥에 화상을 입었을 때 자기 잘못이 아닌데 크게 혼났던 일이라고 했다. 그랬다. 맞다. 그게 첫째 잘못이 아닌데 고작 여섯 살, 일곱 살 정도의 나이였는데 동생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혼을 냈었다. 더욱 미안한 것은 혼낸 기억이 나에게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선명히 기억하는 일을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늦게나마 자기의 억울했던 마음을 표현해 주어 고마웠다. 너무 미안했다. 다른 동생들에 비교해 컸을 뿐 자기도 어린아이였는데 그 놀랐을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다시, 그 상황이라면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놀랐지? 엄마도 놀랐어. 하지만 너의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라고… 


아이들이 쑥쑥 자란다. 그 자라나는 속도가 변곡점을 지나면 너무 빠르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성장의 변곡점인 것 같다. 넷째도 그 변곡점을 향하고 있다. 더 유심히 바라보고 지금을 붙들며 함께 하려 한다. 큰아이들에게 놓치고 지나간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기에 품 안에 있는 오 남매들과 지나온 과거에서 배우며, 오늘을 욕심낸다. 오늘의 감동이 모여 또 다른 내일을 만들어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벗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