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가 돌아왔다

옥알못 극복기

by 한낱



초당 옥수수를 하나 껍질 벗겨 전자레인지에 돌려 접시에 담아놓고 식히는 동안 이 글을 쓴다.

남편이 마트에 들렀다가 온다고 전화했다. 필요한 게 없냐며 물었다. 낮에 커피 타임을 가지며 동네 친구들에게 초당 옥수수가 마트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각났다. 얼른 “초당 옥수수 사 와.”라고 전했다. 그저께 인터넷으로 이미 초당 옥수수를 예약 구매해 놓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드디어 옥수수의 계절이 돌아왔다. 뜨거운 여름이 살을 에는 듯한 겨울보다 훨씬 좋다. 옥수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옥수수를 유난히 좋아했다. 노오란 옥수수. 들큰한 신화당 넣고 찐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뽑아 먹는 재미가 있다. 나에게 샛노란 옥수수는 여름의 상징이다.

군산에 이사 왔는데 동네 친구들이 그런다. “노란 옥수수는 소여물로 쓰는 거라고 여기 사람들은 치지도 않아~” 충격적인 소리였다. “그래? 강원도 찰옥수수는 영 내 입에 안 맞던데~” 나는 여태껏 소여물을 맛있다고 먹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진짜 맛있는 찰옥수수를 먹어보지 못했던 것일까. 그때까지 나는 노란 옥수수와 찰옥수수밖에 몰랐다. 그랬다. 나는 옥알못(옥수수를 알지 못하는)이었다.

여름에 무주에 놀러 갔다가 길가에 펄럭이는 깃발들을 봤다. 괴산 대학 찰옥수수라고 적혀있었다. 옥수수라고 하면 휴게소 중국산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차를 세워 한 망태기를 사 왔다. 충청도 한 대학에서 종자 개발해 만든 옥수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옥수수 러버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과연 쫀득쫀득하니 맛났다.

몇 년 전에 홍콩에서 잠시 머무를 때였다. 그곳에 이주해 살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성현이 엄마가 옥수수를 꼭 먹어보라고 했다. “언니, 여기 옥수수 한 번 먹어 봐요. 정말 신세계일 거예요. 체리나에게 사 오라고 얘기해 뒀어요.” 체리나는 잠깐 우리를 도와주던 필리핀 헬퍼였다. 체리나가 사 온 옥수수를 살짝 삶아 먹었다. 오 마이 갓!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옥수수는 처음이었다. 달고 아삭했다. 과일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사 먹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잘 먹어서 막상 내 입에는 충분할 만큼 안 들어갔다. 그게 내내 아쉬웠다. ‘우리 홍콩에 있을 때 그 옥수수 실컷 먹을걸……’라며 그 맛을 못 잊어 함께 했던 친구와 종종 이야기한다.

한동안 홍콩 옥수수를 잊지 못해 비슷한 것이라도 찾아 헤매던 중 제주도 옥수수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개그우먼 김숙이 TV에 나와서 딱 몇 주만 먹을 수 있는 옥수수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옛날 홍콩에서 먹었던 옥수수와 비슷한 맛일 것 같았다. 제주도 옥수수는 일반 옥수수보다 한참 일찍 출하가 된다고 했다. 매번 시기를 맞추지 못해 구매를 못해서 안타까웠다. ‘아 제발 제주도 옥수수 한 번만이라도 맛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어떻게 하다 보니 딱 시기가 맞게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제주도 하나로 마트 돌아다니며 옥수수를 샀다. 마트에서는 상자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여 복잡한 시내에 있는 우체국을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서 상자를 구해 포장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비행기 시간을 맞춰야 해서 급박했고 상자가 거추장스러웠지만 그 어떤 면세점 쇼핑보다 뿌듯한 획득물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옥수수부터 꺼내 삶아 먹었다. 정말 홍콩 옥수수와 비슷한 맛이 났다. 맛있었지만 구하기 너무 힘들다.

내가 가입한 한 커뮤니티에서 후르츠 콘이라는 것을 봤다. 홍콩에서 옥수수를 먹은 이후, 홍콩 옥수수가 기준이 되었다. 저것도 홍콩 옥수수 맛일 것 같은데……. 그러다가 초당 옥수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삶아서 진공팩으로 되어 있는 것을 사 먹어봤다. 초당 옥수수에 대한 이미지만 나빠졌다. 어느 날 우연히 마트에서 생 초당 옥수수를 팔길래 사 왔다. 물에 삶지도 찌지도 말고 전자레인지로 살짝 돌려먹어보라고 했다. 와우! 내가 찾던 그 달콤함과 아삭함 그 자체였다. 그 후로 매일 냉동실에서 하나씩 꺼내 전자레인지로 돌려먹었다. 나만의 간식이었다.

그 초당 옥수수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루라도 일찍 먹어야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을 하루라도 길게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여름의 태양을 그대로 머금고 탱글탱글 알알이 박혀있는 옥수수를 먹으며 여름을 만끽한다. 올해도 시작됐다. 남들에게는 늦은 봄이겠지만 나에게는 옥수수를 먹은 오늘부터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