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나 3 -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멋지게 연필 사기
‘스승이 없이, 또는 학교에 다니지 아니하고 혼자서 공부함.’
독학의 사전적인 의미이다.
여기 독학을 즐겨하는 한 가족이 군산에 둥지 틀고 살고 있다. 바로 나와 남편, 딸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이다. 우리 셋은 취향이 다르다.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서 외식할 때 메뉴 고르기 힘들 때도 많다. 그런 우리 가족의 공통점이라면 독학으로 뭔가를 익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방법은 제각각 다르지만.
내가 즐겨 부르는 남편의 별명은 ‘독학 기타리스트’이다. 남편은 대학시절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다. 그는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전문 음악인의 길을 가고 싶어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기에는 남편은 현실주의자였다. 빨리 그 꿈을 접고 다른 진로를 선택해 지금까지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음악을 취미로만 남겨둔 남편은 매일 기타를 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도 한때 우쿨렐레를 배운 적이 있어서 안다. 엄청나게 성실하지 않으면 연주 실력이 늘지 않는다. 남편은 혼자 악보를 보며 잘 풀리지 않는 한 마디를 수십 번도 넘게 치면서 완성해 간다.
“또 기타 칠 거야? 시끄러워~. <멜로가 체질> 볼 거란 말이야~”
“조금만 살살 칠게~.”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움츠리고 기타를 친다. 처음에는 시끄럽기만 했다. ‘또 시작이네’ 하던 것이 멋지게 연주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내게 없는 남편의 끈질김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런가 하면 딸은 혼자 유튜브를 보며 최신 걸 그룹 댄스를 외운다. 잠깐 댄스학원을 다닌 적도 있다. 여럿이서 한꺼번에 거울 앞에 서서 앞사람을 보고 따라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만뒀다. 그 뒤부터 집에서 동영상을 보며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 익힐 때는 아주 느린 속도로 영상을 보며 천천히 따라 하다가 점점 아주 괜찮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몸치인 우리 부부는 그런 딸이 신기하기만 하다. 혼자서 작은 영상을 보며 동작을 외우는 것은 어렵고 외로운 작업일 것이다. 그것은 진정 좋아하는 일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나는 요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라고 하기에는 많이 허술하지만 ‘라푼젤’이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자막 없이 보고 있다. 여행 갔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귀부터 뚫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에 딸아이가 어렸을 때 많이 하던 방법인 흘려듣기, 일명 ‘흘듣’을 하고 있다. 적어도 몇 개월은 같은 영상을 볼 계획이다. 너무 지겨워지거나 한국말처럼 들리는 날이 온다면 다른 것으로 넘어가겠지.
신기하게도 처음에 들리지 않았던 대사가 점점 또렷이 들리기 시작한다. 볼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된다. ‘아~, 저때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널고 개면서 짬짬이 보고 귀에 꽂히는 문장은 따라 해 보기도 한다. 귀가 영어의 발음, 높낮이, 리듬 등에 익숙해지면 책을 펴 들어야겠다.
나는 부끄럽게도 태생이 성실, 끈기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되어 있겠지. ‘빨간 머리 앤’의 배경이 된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기념품점에서 앤이 그려진 연필을 멋지게 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한낱 연필을 사는데 멋있을 필요는 없지만.
방식은 다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열정적인 우리 가족. 우리는 서로의 하고 싶은 일들을 인정하고 지지해 준다. 이렇게 꾸준히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다 보면 어느 순간 멋진 특기들을 갖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응원하는 ‘독학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