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우브 베이비웍
그날 저녁의 나는 확실히 허둥대고 있었다. 학원에서 늦게 돌아온 딸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뭐 그리 대단한 걸 해 먹지는 않지만 저녁 식사 준비에 허리는 아프고 다리는 퉁퉁 붓고 있었다. 분명 그랬다.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먹는 건 금방이다. 이제야 겨우 의자에 좀 앉아 먹나 싶은데 바로 식탁을 치워야 하는 기분이다. 나의 노고를 오래오래 생색내고 싶어져 심통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나는 밥을 아주 천천히 먹는 편이다. 앉자마자 후딱 먹고 일어나고 싶지 않다. 특별히 기름때로 끈적거리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내려놓는 식당 말고는.
이제 다 먹은 후 치우고 설거지해야 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이놈의 설거지. 나는 “어이쿠.”하며 일어나 주섬주섬 치우기 시작했다. 빈 그릇은 착착 포개고 수저는 그러모아 한꺼번에 싱크대 설거지 볼 속에 넣는다. 유리컵들은 깨지지 않게 제일 위에 놓는다. 먹은 양보다 음식물 쓰레기가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맥이 풀린다.
이렇게 저렇게 사사삭 치우며 왔다 갔다 하다가 행주가 필요해 찾았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행주가 있었다. 그 행주 위에 뭐가 있는지 조심하지도 않고 잡아당겼다. “파사삭!” 큰 소리와 함께 내가 아끼는 ‘스타우브 베이비웍’의 유리 뚜껑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강화 유리로 만들어진 뚜껑이라서 그런지 아주 작은 유리조각들로 분해되어 버렸다. ‘뭐 어떻게 붙여서 써 보려고 생각도 하지 마!’라고 하는 듯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너무 놀란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발은 다치지 않았다. ‘내 발등에 저 두꺼운 유리 뚜껑이 떨어졌다면……’ 으……. 생각도 하기 싫다.
“오빠야!” 나는 남편을 다급히 불렀다. 확실히 변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은 바로 달려와 괜찮냐며 싹싹 치워주었을 텐데 깨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그냥 앉아있었다. 내가 재차 부르자 일어나 와서 치우기 시작했다. 조심 좀 하지 그랬냐는 잔소리와 함께.
그 순간에는 잔소리나 내 발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나 아끼던 스타우브 베이비웍. 달걀찜은 언제나 그 작고 귀여운 무쇠 냄비에다 만들었다. 우리 세 식구 한 끼 먹기에 딱 좋은 양. 중국집의 웍처럼 생겼지만 아주 작다. 알밥도 담아내고 누룽지나 된장찌개를 끓일 때도 있다. 한 사람분의 음식이라면 뭐든 담아내기 안성맞춤.
깨져 버린 베이비웍 뚜껑을 보니 처음 군산으로 이사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의 나는 이사를 오고 나서 무엇엔가 홀린 듯이 그릇들을 사들였다. 매일 살림과 예쁜 그릇들로 소통하는 커뮤니티 카페에서 남들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아이템들이나 공동구매 품목을 보며 “어머, 이건 반드시 사야 해.”를 외치며 재빠르게 클릭하고 입금을 해댔다. 선착순에 들려고 노력했고 택배 박스는 쌓여갔다. 지나고 보니 반 이상이 그냥 예쁜 쓰레기들이었지만 말이다.
스타우브 베이비웍도 그렇게 장만했다. 그것도 두 개나. 매장보다 훨씬 싼 가격에 공동구매가 올라왔기에 이런 건 쟁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손에 베이비웍이 들어왔을 때 그 귀여움에 감탄했던 것이 생각난다. 앙증맞은 외모와는 다르게 무쇠의 묵직함. 그 당시 살림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 나도 그런 요리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내게 온 ‘베이비’는 달걀찜만 열심히 만들어댔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릇이며 주방 집기들에 집착했을까. 나는 원래 살림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부족함 없을 만큼 주방용품들은 갖추고 있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별별 핑계를 대며 주문을 해댔다. 외로웠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외로워서 그랬다. 처음으로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사를 왔다. 남편은 눈뜨면 일하러 나가 저녁에 들어왔다. 일곱 살 난 딸은 유치원 때 친구들이랑 헤어져서 매일매일 우울해하며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기 위해 딸이랑 산책도 하고 싶었는데 모르는 동네에는 한 발짝도 나가기 싫다며 극구 반대를 했다. 예민한 성격에 한 번 고집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걸 알기에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놀던 친구들과 헤어진다고 얼마나 서럽게 울어댔는지 모른다. 그 마음의 상처를 잘 알기에 하루 종일 TV만 보더라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나도 외로웠다. 나도 친한 친구들, 가족들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버렸다. 이사를 계획할 때는 “그래,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데는 똑같아. 가서 정 붙이고 살면 다 고향 되는 거야.”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였지만 막상 헤어지는 과정은 너무나 슬펐다. 이사 와서도 끊임없이 SNS로 소통은 했지만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 빈 구석을 물건으로 채웠다. 그렇게 예쁜 그릇들로 상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서 ‘나는 여기서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나 보다. 남들이 보면 단순한 자랑질이었겠지만.
베이비웍 뚜껑이 깨지면서 깨달았다. 내가 이고 지고 살고 있는 이 그릇들은 내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외로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달래주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나름대로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었구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웃으며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었구나.
유리 뚜껑이 깨져버린 베이비웍은 그냥 수납장에 들어앉은 채로 있다. 예전 같으면 뚜껑을 산다고 인터넷을 뒤지든지 매장을 찾았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그릇이나 컵을 보며 사 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이곳에 스며들어 적응한 것일까. 외롭지 않은 것일까. 앞으로 또다시 그릇들을 사 모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니다. 남은 설거지나 마저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