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 식판, 반찬통 뚜껑
설거지를 하다 보면 영 성가신 것들이 있다. 손이 들어가지 않는 입구가 좁고 긴 형태의 각종 텀블러들, 오밀조밀 구획이 나누어져 있어 구석구석까지 닦으려면 손가락이 아픈 식판, 고무 패킹이 박혀있고 복잡한 형태의 반찬통 뚜껑. 내가 제일 씻기 싫은 3대 식기들이다.
-텀블러의 역설
얼마 전 에코백을 최소 131번을 들어야 비닐봉지보다 낫다는 기사를 읽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만들어낸 에코백이 사실은 그렇게 친환경적이지는 않다는 역설적인 이야기였다. 한동안 유행처럼 너도나도 에코백을 사은품이나 기념품으로 나눠줬다. 물론 내 돈 주고 산 것들도 있다. 그 많은 에코백을 각각 131번 이상 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럼 더 이상 에코백이 아닌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양상으로 우리 집에 많은 텀블러가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하자며 여기저기서 많이도 받고, 내 돈 주고 사기도 했다. 스테인리스로 된 것, 플라스틱으로 된 것, 접히는 것, 여행지에서 기념으로 사 온 것, 사은품으로 받은 것,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비싼 돈 주고 산 것, 유리로 된 것. 이것들은 몇 번을 써야 진정한 환경 보호에 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꾸역꾸역 모은 텀블러들은 싱크대 한구석에 주르륵 모여 씻기기를 기다리고 있기 일쑤다. 수세미로 다른 그릇들을 씻다가 텀블러용 긴 막대기가 달린 수세미로 바꿔 들어야 하기 때문에 설거지의 흐름이 끊긴다. 그럼 ‘에이, 나중에 씻어야지.’하고 하나둘 그냥 올려 두면 설거지를 기다리는 텀블러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수세미가 달린 긴 막대기를 넣고 비비고 돌리고 헹궈야 한다.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니 특별히 신경 써서 씻어내야 해서 역으로 손이 많이 간다. 설거지하기 귀찮아지니 사용하기 꺼려지고 사용하지 않을 텀블러들을 수집한다면 이것은 텀블러의 역설 아닌가.
그런 내가 요즘은 운동 갈 때마다 꼭 텀블러를 챙겨 든다. 운동하는 곳 근처에 손쉽게 커피를 살 카페도 없고 생수를 살 편의점도 없다. 자판기에는 내 취향의 음료가 없다. 필요하니까 저절로 손이 간다. 환경 보호를 위해서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은 많은 텀블러나 에코백이 아니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덜 불편함이 불편함을 이기는 것이다.
-딸의 식판
지금은 딸아이가 커버려서 식판을 씻을 일이 없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3년 동안 제일 씻기 싫어했던 게 식판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녀오면 제일 먼저 식판을 꺼내 뚜껑과 분리시켜 싱크대에 내놓았다. 뚜껑을 열어보면 오늘 뭘 먹었는지 대충 짐작이 됐다. 딸아이는 메추리알이 먹기 싫어 선생님과 신경전을 자주 벌이곤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반찬을 집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을 것을 생각하면 귀여워 빙긋이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물론 역한 냄새가 덤으로 따라오는 날도 있었다.
조그만 유치원생의 점심을 책임져 주던 식판의 최대 함정은 씻기 귀찮은 구조라는 것이었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씻지 않으면 기름기가 덜 빠져 영 찝찝했다. 식판이 미끄러지지 않게 왼손으로 꽉 쥐고 오른손으로 수세미를 들어 뽀드득거리게 문질러 낸 후 헹궈냈다. 꽉 쥔 손이 아프도록 오밀조밀 나누어져 있는 식판의 벽들을 박박 닦아 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나서 이제는 식판 씻을 일이 없나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편식하는 딸아이를 위해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나눔 접시를 몇 개 샀다. 자동차 모양이나 집 모양의 나눔 접시들에 반찬을 담아주면 잘 먹지 않을까 해서였다. 안 먹는 아이들은 이렇게 해 주나 저렇게 해 주나 안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식판을 씻기 싫어하던 나는 결국 나눔 접시를 쓰지 않게 되고 과감히 정리해 버렸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식판에 밥을 먹는 딸아이. 금속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나 비릿한 쇠 맛. 얼마나 싫을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담아도 맛없어 보이는, 실제로 맛없어지는 식판에 밥 먹는 아이들.
딸은 가끔 음료수를 마실 때 내가 아끼는 예쁜 잔을 꺼내 쓰고 싶어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꼭 한소리를 했다. ‘깨진다 조심해라’, ‘편하게 먹는데 꼭 그런 걸 써야겠냐.’ 지금 생각해 보면 쇠 맛 나는 식판에 밥을 먹고 온 아이가 집에서만큼은 예쁜 컵에 스스로를 대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깟 컵이 뭐라고, 그렇게 타박을 했나 반성하게 된다. 그래 써라. 맘껏 써라. 너는 대접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오늘 아침, 예쁜 컵에 새싹 보리 귀리 셰이크를 따라주었다
-친구네 반찬통
씻기 싫은 3대 식기 중 최고는 반찬통 뚜껑이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한 구조다. 일명 ‘락앤락’ 형 뚜껑은 고무 패킹이 박혀있다. 고무 패킹이 있다는 이야기는 좁은 틈도 있다는 말이다. 그 주위로 4개 정도의 잠금장치가 있다. 반찬통 뚜껑은 틈새가 너무 많다. 구석구석 수세미를 말아 쥐고 틈새에 집어넣어 씻어내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찬통 뚜껑 하나 가지고 웬 엄살이냐고 한다면 할 말 없다. 그만큼 싫은 아이템이다. 설거지할 때는 항상 미루고 미뤄서 제일 마지막에 씻는다. 좀 더 잘 닦이는 구조의 반찬통 뚜껑 어디 없나요?
냉장고 반찬 정리를 한 날이면 쏟아져 나온 반찬통들과 그 뚜껑들. 하…… 최대한 냉장고를 정리하기가 싫어진다.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 주범들. 그래도 어쩌겠는가. 새로운 반찬을 담기 위해서는 박박 씻어 빈 반찬통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잠깐 1층으로 내려올 수 있어?” 김치 담았다고, 달걀 장조림 만들었다고, 피클 담아봤다고 엄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는 친구가 있다. 엄마인 나도 잘 못 챙기는 딸아이의 편식을 걱정해 먹여보라며 또 여러 가지를 챙겨준다. 시골 밭에서 따온 상추라며 깨끗이 씻어 바로 먹을 수 있게 싸서 건네주고 훌쩍 떠난다. 나는 그저 맛있게 잘 먹을 뿐이다.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친정도 시댁도 멀리 있는 나에게 친정엄마처럼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주고 함께 해 줬다. 내가 군산에서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살고 있는 것은 8할이 이 친구 덕분이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던 시절 여기저기 지역 맛집을 데려가 줬고 각종 군산만의 문화들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어느 모임에라도 나가면 군산 사람보다 맛집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그런 친구의 반찬통이 수납장 안에 쌓여 있다. 돌려줘야지 돌려줘야지 하면서 자꾸 잊어버린다. 먹을 때는 맛있다고 먹어 놓고 은혜 갚는 건 자꾸 잊어버린다. 빈 그릇은 그냥 돌려주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뭘 채워 돌려보내야 하나 고민되는 밤이다. 요리를 잘해 음식을 가득 담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은 ‘롯데월드타워’ 만큼 높지만 현실성은 없다. 나는 내 방식으로 돌려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주 안으로는 꼭 돌려줘야지. 어떻게 하면 내 감사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씻기 싫은 식기들 조차도 제각각 사연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번 글을 쓰며 깨달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붙여 게으름병을 더 악화시키고 합리화시키는 나약한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찌질한 사람이었나?’ 내가 가진 식기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고 그것들과 이야기 나눠보니 나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네는 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내가 너무 홀대했구나.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