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또 컵 하나

by 한낱

나만 쉬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고만 싶다. 남편과 딸이 자기들만의 세계로 나가고 나면 나는 드디어 혼자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작정하고 설거지도, 청소도 하지 않기로 하는 그런 날이다.


매 끼니를 성실하게 챙겨 먹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기는 흔적들은 있기 마련이다. 나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 흔적들을 남겼다. 아침 식사를 위해 사용한 그릇들, 수저, 컵들, 점심때 혼자 끓여 먹은 라면 냄비, 젓가락, 김치를 담았던 반찬기, 물 마셨던 컵 하나 더, 하루 종일 차와 커피를 마셔댔던 각종 모양의 컵들. 혼자 남긴 흔적도 이렇게나 많다니.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작정한 날이기 때문에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고 저녁을 먹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설거지를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무슨 일이든 마음이 동해야 하는 것이다. 암만.


하루 종일 써댄 그릇들에 식구들의 저녁 식사 설거지거리까지. 싱크대가 넘쳐날 정도로 가득하다. 작정하고 미뤄둔 만큼 각오한 일이었기에 그냥 무념무상으로 시작한다. 하다 보면 냉장고 속 반찬 통들도 정리하고 싶어 진다. 난도 높은 반찬통 뚜껑도 씻어야 하기 때문에 살짝 고민하기도 한다. 어차피 해치워버려야 할 일들이기에 눈을 질끈 감고 시작한다.


한참을 서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발바닥, 발뒤꿈치도 아프다. 앞치마를 했는데도 배 부분은 물에 흠뻑 젖었다(그래요, 배가 나왔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테이블이나 방에 컵 있으면 가지고 와!”라며 큰소리로 외쳐본다. “아무것도 없어.”남편의 대답을 들었다. 그래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남겨둔 게 있으면 안 되니까 주위를 둘러본다. 가스레인지 위도 식탁 위도 테이블 위도 모두 오케이, 아무것도 없군. 긴 시간에 걸쳐 한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싱크볼도 닦고 손도 씻고 앞치마도 벗어 걸어둔다. 깨끗해진 싱크대를 보며 만족해한다.


이제 일도 하고 책도 읽기 위해 집안을 돌아다니며 자리를 물색한다. 그러다 저녁 먹고 학원 간 딸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아뿔싸! 딸아이의 책상 위에서 얼음을 품은 채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유리컵 하나를 발견했다. 이런, 결국 내가 만든 깨끗한 ‘설거지 대야 성(城)’에 유리컵 하나를 놓아야만 했다. 적군이 쳐들어온 것이다. 실컷 허리 아프게 설거지 다 하고 이제는 끝이구나 하며 돌아서면 컵이 또 하나,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다. 끊임없이 왜구와 오랑캐를 막아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이때 ‘돌아서면 컵 하나’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끝없는 설거지 전쟁.


컵은 주로 액체를 담는데 쓰인다. 물, 주스, 커피, 즙, 한약 등. 출렁이는 것은 무엇이든 안정적으로 담아낸다. 출렁이는 액체는 불안한데 컵은 그 불안함을 고스란히 담고 조용히 불안을 잠재운다. 감히 왜구나 오랑캐에 빗대어 말할 수 없는 고귀한 물건이다.


지금 딸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딸아이의 출렁이는 불안을 내가 컵처럼 조용히 담고 안정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디로 흐를지 모르고 쏟아지면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저 컵 안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컵보다 못하다. 조용히 담대하게 품어주며 괜찮다고 다들 그런 시기를 거친다고, 지나고 나면 다시 평온해진다는 것을 성숙한 어른처럼 가르쳐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같이 출렁이다 쏟고 만다. 사춘기의 딸만큼이나 출렁대고 있다. 나는 딸에게 변함없는 안정감 주고 싶은데 딸보다 더한 불안함과 초조함을 들키고 만다.


컵은 신비한 마법을 지녔다. 아무리 열심히 씻어 말려두어도 늘 모자라다. 식구 수에 비해서 적은 수도 아닌데 말이다. 그 컵들은 집안 여기저기에 놓여있다. 딸아이 방, 거실 테이블, 식탁 위, 침실 등 넓지도 않은 집 곳곳에 놓여있다. 신기한 것은 주변과 너무나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곳에 컵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여기저기 놓여있어도 어떤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울려 튀지 않고 그저 편안함을 내어 주는 컵의 신비함을 닮고 싶다. 나는 그런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다. 특히 내 딸에게 그런 엄마였으면 좋겠다. 그게 참……하……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