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 공효진 등이 출연했던 유명 드라마의 제목이 아니다. 열네 살 딸아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를 않아 이제 그만 하라고 하면 영락없이 “알겠어!”라며 앙칼진 대답을 한다든지, 약속한 사용 시간이 끝났다고 알리면 아주 다급하게 “잠시만, 잠시만”을 외친다. 그때부터 ‘파이트’ 시작이다.
최근들어 그나마 딸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장소는 주방이다. 딸은 아침 밥이나 학원 가기 전 간단한 요기, 혹은 이른 저녁을 혼자 먹어야할 때가 있다. 딸에게 밥을 차려 주고 나는 돌아서서 설거지나 주방 정리를 한다. 딸은 내가 밥을 차려주고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싫은 티를 팍팍낸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의 상처를 입느니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딸이 별 무게감 없는 말들을 툭툭 던진다. 학교나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이나 연예인 이야기,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들. 그럼 나도 아무렇지 않게 담백하게 받아친다. 최대한 담백하게.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괜히 뭔가 훈수라도 두려고 하면 점점 서로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대화 단절로 이어진다.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이임숙, 창비)라는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딸의 그런 행동에 ‘이건 뭔가가 잘못되고 있어’라며 안달복달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밥 먹어”, “밥 먹자”, “밥 차려 놓았어”라는 말 중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밥 차려 놓았어”라는 말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선택과 자유를 허락하는 의미다. 밥 차려 놓았으니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거다. 이 책을 읽을 때만해도 아직 6학년 초기였기 때문에 ‘에이, 설마 그럴까. 그래도 혼자 먹으면 외로울 테니까 옆에 있어 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도 혼자 밥 먹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안 그랬으면 매일 밥상머리에서 싸웠을 테니 말이다.
딸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필요 이상으로 주방을 서성인다. 설거지거리가 없으면 가스레인지를 닦는다든지, 그릇들을 챙겨 넣는다든지 냉장고문을 괜히 열어 본다든지. 식탁 주위에서 바쁜척 한다. 그러면 딸은 예상 외로 재잘재잘 말을 한다. 중학생 정도되니 학교 친구들이나 선생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다. 나의 가물가물한 학창 시절 생각도 난다. 세상은 아주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여중생의 마음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날은 좋은 예이다.
내가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날이 있다. 온통 안테나는 핸드폰 보며 밥 먹고 있는 아이에게 가 있다. ‘얼른 먹고 학원 갈 준비를 할 것이지’,’시간 아깝게 왜 저렇게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지? 그냥 팍팍 빨리 먹지’하는 생각이 실제 목소리로 안 나오게 꾹꾹 누르다가 결국 폭발해 버린다. 온갖 날이 선 말들로 아이의 심경을 건드리고 아이도 질세라 따박따박 목청 자랑을 한다. 그러다 먹다 말고 휙 학원으로, 학교로 가 버린다.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이런 날은 나쁜 예이다.
이런 날은 일부러 그릇이 깨져라 더 큰 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될 때가 너무나 많다. 한참을 달그락거리며 설거지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진정이 된다. 화를 내고 보낸 딸이 걱정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이가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와 세탁실로 옷을 가져다 놓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눈길이 발뒤꿈치에 닿았다. 발뒤꿈치가 발갛게 달아올라있다. 맨들맨들, 보들보들해 보인다. 아직 발뒤꿈치가 굳어지지도 갈라지지도 않을 만큼 땅을 많이 딛지 않았다. 샤워하고 나온 딸아이의 발뒤꿈치를 보고 불현 듯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발뒤꿈치가 굳고 각질도 생기고 심지어 갈라지기도 한다. 아직 어린데, 뭘 몰라서 그런 건데, 내 굳어진 발뒤꿈치 세월만큼의 지혜와 상식을 한꺼번에 요구했던 것일까.
앞으로 수없이 많은 시간, 딸은 땅에 발을 디디게 될 것이다. 그 보드랍던 발뒤꿈치도 점점 굳어가겠지. 그만큼 세상을 알아가고 자기 할 일들도 스스로 잘 챙겨 나가게 되겠지. 그럼 그 때는 딸의 ‘알았어! 잠시만’을 또 그리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