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남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남편과 쇼핑하러 나갔다가 들어온 저녁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사놓기만 하고 입을 일이 없었던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거기에 맞춰 눈부신 큐빅이 촘촘히 박혀있고 살짝 높은 굽에 뒤는 트인 뮬을 신었다. 집 안에서 크게 움직일 일도 없었고, 운동도 쉰 지 오래됐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오니 다리며, 발이며, 허리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난 후 치워야 하는데 내 입에서는 저절로 “아이고, 아이고, 아야야야, 움직일 수가 없네, 꼼짝을 못 하겠다.”라는 소리가 계속 나왔다. 내가 원체 저질 체력인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은 들어가서 쉬라며 자기가 주섬주섬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 그 정도만 해줘도 고맙지.’ 얼른 들어가 누웠다가 잠시 나왔는데 남편이 설거지까지 하고 있었다. 식탁 위만 치우고 말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거지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설거지 하는 남편의 등.
“그 집 아빠는 전라도다 아이가~”
엄마가 한 번씩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 집 아빠는 전라도 사람이라서 가정에 충실하고 가족밖에 모른다는 말이다. 부러움이 섞인 말이다. 그때는 ‘전라도 사람이 자상한가 보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앞집 I언니의 아빠도, 옆집 K의 아빠도 다 전라도 사람이었다. 우리 아빠는 완전 경상도 남자다. 마흔이 다 되도록 부산에서 살던 내가 볼 수 있는 남자는 다 부산 사람이었다. 특별히 전라도 남자들을 볼 기회가 없었다. 부산 남자와 전라도 남자의 차이를 모르고 살았다. 별 불편함도 없었다.
확실히 군산으로 이사와 보니 알겠다. 전라도 아빠들은 가정적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내 주위는 다 그렇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밥 먹여 학교도 보낸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나간다. 한두 집이 그러나 싶었는데 만나는 대부분의 집들이 그러했다.
남편은 직장 동료가 부인에게 “자기야”라고 부른다며 깜짝 놀라 했다. 쉰 살이 넘은 남자가 “자기야”라고 표현하는 게 너무 어색하다는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군산에 살고 있는 배지영 작가의 ‘소년의 레시피’를 읽었다. 일찍 진로를 정해 강단 있게 제 앞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큰아들이 멋졌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내가 부러워한 사람은 그 집 엄마였다.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남편이 매일 밥을 해 주나. 거슬러 올라가 보니 시아버지도 가족을 위해 밥을 해 주시는 분이란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졌다.
경상도 남자들은 확실히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잘해 주고 싶어도, 뭔가 좋은 것을 주고 싶어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오다 주웠다.”
이 유명한 말에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도 많을 것이다. 경상도 남자들도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전 세계 어느 남자들 못지않다고 확신한다. 아버지와 아버님이 그렇고 내 남편도 그러하니.
반면, 전라도 남자들은 내 편에게는 확실하게 표시를 하는 것 같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편. 솔직히 나는 남편이 전라도 남편들 같지 않아서 불편하거나 불만은 없다. 그런데 이곳으로 와서 남편이 많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자신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직장 동료들의 생활을 전해 듣거나 딸의 친구 가족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히 보고 배우는 것 같다.
그날 저녁 남편은 나에게 확실히 표현했다. 집안일은 분담의 개념이 아니라 도와주는 개념이라며 간 큰 소리를 해대던 경상도 남자가 스스로 설거지를 했다. 그것도 개수구까지 뽀드득뽀드득 소리 날만큼 깨끗하게. 음식물 쓰레기 처리까지 싹 해 놓고 설거지 볼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은 것을 보고 생각이 났다. ‘원래 이 사람은 살림 잘하던 사람이었는데.’
예전에 외국에서 살 때는 엄청나게 집안일도 잘하던 사람이 귀국하자마자 손을 딱 놓는 것을 보고 환경이 문제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남자의 집안일을 막는 보수적인 환경.
하긴, 집안일 분담을 논하기에는 남편은 너무 바쁘고 피곤했고 나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정리는 잘하는 사람이라 여전히 쓰레기 분리수거는 알아서 척척 한다. 이것만으로도 괜찮다.
남편이 주방을 정리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아 기타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솔’의 음정으로 과하게 호들갑 떨며 칭찬하고 고마워했다. 어쩜 나보다 더 깨끗하게 잘했냐, 설거지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편히 쉬었다며. 남편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싫지 않은 눈치였다. 누구든 뿌듯한 일을 하고 나면 생색내고 싶은데, 알아 봐주니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너무 구차해 보이는가? 아니, 나는 몸이 편한 게 더 좋다.
남편이 그릇들을 씻어 곱게 엎어놓고 깔끔하게 정리한 싱크대를 보다가 빙긋이 웃음이 났다. 개수대 안에 유리컵 세 개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남편도 ‘돌아서면 또 컵 하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