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도 말 못 한 명품 칼 ‘컷코’
딸아이 소풍날 아침의 주방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같다. 폭격기를 맞은 것처럼 각종 볼과 주걱 같은 주방용품들이 다 나와 뒤엉켜 있고 밥풀과 남은 김밥 재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재료를 썰었던 식칼, 김밥을 두세 줄 한꺼번에 자를 수 있는 빵칼, 과일을 깎은 과도 등 온갖 칼들이 다 나와 있다.
아이를 키우며 몇 년간 소풍 도시락을 쌌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소풍날은 늘 긴장되고 분주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피곤하다. 허둥지둥 챙겨 보내고 나면 전장에 홀로 남은 장군이 된다. 잘 싸웠다. 커피를 한 잔 내려 혼자서 승리의 축배를 든다.
정신을 차리고 슬슬 치우면서 유난히 많이 나와 있는 하얀 손잡이의 칼들을 보니 그때 생각이 가만히 떠오른다.
“언니, 컷코 매니저님 오셔서 시연회 하니까 꼭 오세요.”
동네 친한 동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옳거니! 드디어 컷코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기회가 생기는구나.
‘컷코’는 70년 전통 미국 주방용품계의 샤넬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냥 매장에 가서 살 수는 없고 방문판매로 살 수 있다. 보통 서너 명을 모으면 방문판매 담당자(매니저)가 칼 세트를 가지고 와 시연을 한다.
인터넷 카페에서 종종 봐 왔었기에 도대체 그 칼이 뭐길래 그렇게 다들 부러워하는 걸까. 궁금하던 참이었다. 나는 이미 호기심을 넘어서 조건이 괜찮다면 살 수도 있다는 각오였다. 내가 이 정도의 생각을 한다는 것이면 뭐 그날 결제는 확정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귀가 너무 얇아 아기 코끼리 덤보의 귀처럼 펄럭펄럭 거린다. 늘 ‘그냥 상담만 해야지’ 하고 갔는데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내고 있는 내 모습에 흠칫흠칫 놀란다. 나약한 인간.
그날의 시연은 성공적이었다. 칼의 성능과 재질은 당연히 최상품이었다. 거기다 둥글넓적하게 생겼는데 한쪽에만 칼날이 있어 자를 수도 있고 잼을 펴 바를 수도 있고 뒤집개로도 쓸 수 있는 만능 칼, 김밥을 세네 줄을 한꺼번에 자를 수 있는 빵칼, 육류용 길고 뾰족한 톱니 칼 , 수육 썰 때 쓰면 좋다는 긴 터닝 포크. 그중 동전까지 잘라지는 가위는 정말 놀라웠다. 미국 홈쇼핑 관객처럼 “오~ 와!”를 연신 외쳐댔다. 시연회에 참석만 해도 준다는 미니 톱니 칼까지 받았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하나의 칼만 썼다. 친구와 국제시장에서 산 독일제 톱니 과도. 그것 하나로 채소도 자르고 고기도 자르고 빵도 잘랐다. 전혀 불편함 없이 살고 있었는데 그날 그 많은 종류의 칼과 식재료에 따라 칼을 바꿔 써야 한다는 사실들을 알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무지했던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다. 또 그 욕망의 병이 도졌다. ‘저 칼 세트들만 있으면 나는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 가족들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줄 수 있을 거야.’
시연회를 연 동생은 먼저 샀기 때문에 그 동생에게 조언을 얻어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세뇌한 것들로만 세트를 구성해서 구매했다. 매니저는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아주 고가의 칼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먹고사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였지 비싼 칼을 덥석 사들일 만큼 넉넉하지는 않았다. 굳이 없어도 되는 칼이었다. 주방계의 샤넬은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것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저것들을 내 손에 넣어 나도 ‘컷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들만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다. 욕망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산 그 칼 세트가 TV만 켜면 연예인들이 쓰고 있었다. 마침 요리, 미식이 대유행하던 시기였다. 그 칼들을 보며 ‘나도 저거 쓴다고. 거봐, 내 선택이 옳았어.’ 다 협찬인 것을 알면서도 속물적인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동경했다. 고급 브랜드들을 다룬 잡지들을 즐겨 봤고 재벌이 나오는 드라마들을 좋아했다. 화려한 그들의 삶에 나를 끼워 넣는 상상을 했다.
커서는 남들이 하는 것들을 해 보고 싶었고 남들이 가진 것들을 가지고 싶었다. ‘나라고 못 할 것 있나? 못 가질 것 있나?’ 하는 생각에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하거나 가지고야 말았다.
그 마음이 아이를 키우면서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좋다는 고급 교육을 다 받아 보게 하고 싶었다. 각종 브랜드의 놀이 미술과, 야마하 음악 교실이며, 사고력 수학 등.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교실에 들여놓고 밖에 앉아 엄마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보들을 또 얻고 또 찾아 가보고.
딸은 그때부터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 때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 가서 ‘가스가 찼다’, ‘스트레스성이다’라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유치원생이 엄마에게 반항할 수 있는 최대치가 배 아픈 것이었다. 나는 취해있었다. 유행하는 교육을 시키면서 제대로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의 허영심에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약한 자는 욕망과 허영심에 잠식된다.
결국 남편에게는 칼을 샀다는 말을 못 했다. 12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을 받아 산 그 칼은 할부금이 끝날 때까지 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싱크대 구석에 칼 블록 세트를 놓아두고 각종 칼들을 주르륵 꽂아 두었지만 남편은 별 관심이 없었다. 남편의 상식에는 칼이 그렇게 비싼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자주 뭔가를 사들이는 공동구매 카페에서 샀겠지’ 싶은 것 같았다. 물어보지도 않기에 굳이 말하지도 않았다. 이 글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남편은 이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모를 것이다.
한참을 지나서 좀 더 대담해져 커트러리 세트까지 들였고 최근에는 한정품으로 나온 빨간 손잡이의 채소 칼을 추가했다. 지금도 그 칼들을 잘 쓰고 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쓴 칼들도 있고 매번 잘 쓰고 있는 것도 있다. 대를 물려 쓴다는 그 칼을 볼 때마다 과연 그 시절 왜 그렇게까지 갖고 싶어 했던 걸까. 그저 나의 허영심으로 가득 찬 호기심이었던 것일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잘 쓰고 있으면 됐지. 단순하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