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누리는 아침과 밤

by 한낱

딸아이의 중학교 등교를 시키며 자연히 이른 아침 생활이 시작됐다. 초등학생 엄마일 때와는 다르게 부담감과 책임감이 확실히 더 무겁게 다가온다. 어릴 적부터 편식이 심했던 딸은 중학생이 되어도 여전하다. 매일 밤 자기 전에 “내일 아침은 꼭 먹어야 돼!”라고 다짐을 받아 놓는다. 그러나 늘 같은 일의 반복이다. 아침 먹이기 전쟁. 거기다 요즘은 코로나 19 대책으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이의 체온을 재고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을 보낸다. 혹시라도 깜빡할까 봐 알람 설정까지 해놓았다. 물통을 잊지 않고 넣어주기, 교복 입는 날과 체육복 입는 날에 맞춰 옷은 세탁되어 있는지, 마스크는 챙겼는지, 통학버스에 늦지 않게 챙겨 보내는 일상이다. 중학생 엄마의 삶도 이렇게 피곤한 걸 보면 고등학생 엄마를 대비해 홍삼이라도 미리 챙겨 먹어야겠다.


여러 가지 단계의 미션을 무사히 마치고 딸은 현관문을 나선다. “오늘도 잘 다녀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할 때까지 지켜본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의 습관이다. 처음에는 1학년짜리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가 혹시 고장이라도 난다면 바로 뛰어나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냥 매일매일 나만의 의식이 되었다. 잘 다녀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층까지 눈으로 배웅하는 것이다. 1층에 도착해 화살표의 점멸이 끝나면 살며시 문을 닫고 들어온다. 그때쯤 남편도 출근한다. 그럼 이제 내 세상이다. 이른 아침에 시작한 덕분에 초등학교 다닐 때에 비해 1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 생긴다. 몸은 피곤함으로 값을 치루어야 하지만.


딸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가장 큰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잠깐의 여유 시간에 침대에 다시 누워 모자란 잠을 보충할 것인가, 아니면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 것인가. 전자가 이기는 날은 그냥 아무것도 못 하는 날이다. ‘하루를 공쳤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후회하는 오후를 맞이하게 된다.


후자가 이기게 되면 우선 딸아이가 대충 끼적거려 놓은 아침 상을 치우고 난 후 식탁을 깨끗이 닦는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곳이 내 작업실이 된다. 나는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나만의 작업실이 따로 있다. 식탁보다 큰 테이블이며 책, 프린터, 제본기, 각종 필기구들, 파일들. 원하는 대로 일을 할 수 있게 갖춰져 있지만 나는 식탁에서 뭔가를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에세이 모임에서 필사 모임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와 참가하게 되었다. 자기가 쓰고 싶은 책을 골라 쓰고 SNS의 모임방에 매일 사진을 찍어 올리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나 눈치 보거나 스트레스받을 일 없이 그저 자기만의 필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참 편안했다.


흔쾌히 좋다고 시작하고는 며칠 못가 낙오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이 필사라는 것이 생각보다 엄청난 매력이 있었다. 꾸준히 뭔가를 하지 못하던 내가 책 한 권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하루도 안 빠지고 썼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이 많았거나 피곤해서 눈이 시려 도저히 뜰 수 없던 날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의 매일 쓰려고 노력했다.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온 날 밤에도 감기는 눈을 어쩌지도 못하고 휘갈겨 쓴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중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는 아침 시간을 이용해 필사를 하게 되었다. 작업실이 된 식탁 위에 요즘 내가 필사하고 있는 책과 노트를 제일 먼저 펼친다. 지금은 박연준 시인의 『모월모일』을 한창 필사 중이다. 이 책은 읽고 있는 중에도 베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읽는 중 몰입감을 깨뜨리기 싫어 쭉 읽기만 했다. 이 책은 시인이 쓴 책이라 그런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이나 상황을 새로운 시각의 어휘들로 펼쳐낸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나도 늘 보던 것들인데, 나도 아는 건데. 책을 읽으며 ‘와, 문장 좋다, 표현이 멋지다’라고 해도 금방 다 잊어버린다. 다시 읽는 기쁨, 내 손으로 꾹꾹 눌러쓰며 한 번 더 곱씹어보고 되새김질해 보는 즐거움이 필사에는 있더라.


남편과 딸아이가 제각기 자기만의 공간으로 나서고 나면 나도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 열린다. 오늘같이 장맛비가 오는 날은 빗소리를 들으며 낭만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읽고 있다. 편안하고 소소한 행복이다.


식탁에서 바라보는 싱크대와 거실. 싱크대도 정리해야 하고 거실에는 아침 전쟁을 치러낸 널브러진 옷이며 수건이 그대로 보인다. 애써 모르는 척, 안 본 척한다. 지극히 생활감 있는 이 공간들 사이에서 나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침에 새롭게 생겨난 1시간은 식탁에서 즐기는 나만의 시간.



이따금 ‘윙-’하는 정수기 소리만이 한밤중의 정적을 깬다. 우리 집 ‘정쑤기 언니(부산 억양)’는 늦은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본받아야 하는 걸까.


예전부터 탐내던 가볍고 작은 노트북을 갖게 됐다. 새 것은 아니다. 남편의 사정에 의해 내 것이 되었다. 날렵한 노트북을 새로 바꾼 밝은 식탁 테이블에 놓으니 왠지 작가의 작업실이 된 듯 근사하다. 언젠가 TV에서 본 작가의 작업 테이블이 꼭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얼마 전에 읽은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이하루 지음, 상상출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브런치 북 대상 받은 작가가 쓴 책이었다.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용기를 한 권 내내 북돋아 주는 책이었다. 술술 잘 읽히고 그럭저럭 재미도 있고 울컥하기도 했다.


에세이 모임을 하며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책의 제일 마지막 장이었다. ‘에세이를 쓰며 알게 된 51가지’는 너무나도 내 이야기 같아서 사진도 찍어 놓고(빌린 책이라) 에세이 모임 SNS 단체 모임방에도 올리고 따로 지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그런 감정. 그렇다. 상 받은 책을 낸 작가도 아직 걸음마 연습하고 있는 나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쓰고 읽는 것이 쌓이면 내 감정을 남에게 맡기지 않게 되고’


51가지 중 가장 공감한 46번이다(물론 거의 대부분에 공감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조바심이 사라지게 되고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졌다. 누군가의 감정 기복에 내 감정이 휩쓸리지 않게 됐다.


나도 내 감정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보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라는 물음을 스스로 하게 됐다. 화내고 짜증내고 원망하기보다는 문제점을 찾아 혼자 힘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게, 그러고 보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면서 자존감도 회복되는 것 같다. 그냥 ‘재미있어, 짜증 나’가 아니라 감정에 구체적이고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줘야겠다. 내 감정이 남의 판단에 맡겨져 마음대로 추측하게 내버려 두지 않아야겠다.


‘쌓인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끊임없이 꾸준히 계속해야 쌓이는 것이니까.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일도 쌓일 정도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나이에 부끄러운 일이다.


미녀 개그우먼 박나래가 그랬다던가. 개그 하는 박나래, 디제잉하는 박나래, 술 취한 박나래, 여자 박나래. 여러 박나래가 있어서 누구 하나가 힘들면 다른 박나래 때문에 괜찮다고.


요즘 나도 여러 명의 내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괜찮아졌나 보다. 쓰고 읽고 쌓이다 보면 내 글도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날이 오겠지. ‘글을 쓰는 자아’도 참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이런 기특한 생각할 때도 나는 언제나 식탁에 앉아있다. 위풍당당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냉장고를 마주하고 앉아 좌 싱크대 우 소파를 거느리고 깊은 밤을 지배하고 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은 오롯이 나만의 시공간이다. 신기료장수의 요정들이 밤새 구두를 지어 놓듯 나도 나만의 글을 짓고 싶다.


아침에는 나의 하루를 열게 하고 밤에는 나의 곤비함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은 식탁이다. 보잘것 없이 작은 공간이 주는 위로는 그 어떤 물질적인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다. 값비싼 그릇과 화려한 음식들로 덮인 식탁보다 깨끗이 텅 비어 있는 식탁이 건네 오는 유혹은 뿌리칠 수 없이 치명적이다. 당장 책을 펼치고 노트북을 열고 싶어 진다. 오늘도 다른 곳은 제쳐두고 식탁만은 열심히 치우고 닦는다. 내일의 위로와 평안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