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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낱 Nov 28. 2020

티스푼 달궈봤니?

식탁에서 행해지는 쌍꺼풀 시술


 지금 그녀는 말끔히 닦아 놓은 식탁 앞에 앉아 거울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자신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다. 그녀는 14살, 중1이다.      

 

 시험공부한다며 방문 닫고 들어갔던 그녀가 갑자기 문을 벌컥 열며 나왔다.     

  “엄마! 티스푼을 가스 불에 좀 달궈줘. 그걸 냉동실에서 잠깐 식혀서 쌍꺼풀 만들 수 있대!”    

  

 딸이여, 나는 네가 시험공부하고 있는 줄 알았다.      

   

 “무슨 말이야~ 그런 식으로 쌍꺼풀 만들면 눈꺼풀이 쳐져서 나중에 수술도 안 된대~”

  “티스푼으로 라인 계속 잡아주면 쌍꺼풀이 생겨서 수술 안 해도 되고 그럼 돈도 아끼고 좋잖아.”


 일단 방어는 해 봤지만 유튜브 동영상으로 이미 한참을 찾아보며 공부한 그녀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실랑이해봤자 시간만 아까울 뿐이다. 에라 잇! 내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이미 자기 눈에 딱 맞는 티스푼을 찾아놓았다. 그걸 들고 가스레인지를 켜서 불에 달궈주었다. 티스푼을 불에 달구고 있는데 그녀가 물었다.     

  

 “엄마는 어릴 때 쌍꺼풀 만들고 그러지 않았어?”

 “나는 쌍꺼풀은 관심 없었어. 코를 세우고 싶어서 빨래집게를 꽂고 다니긴 했지만.”     

 

 그러네. 나도 옛날에 그런 적이 있었네.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뜨겁게 달군 티스푼을 건네자 그녀는 냉동실 문을 열어 놓은 채로 티스푼을 넣었다 뺐다 했다. 엄마가 너무 뜨겁게 달궜다고 한소리 하면서. 하여튼 같이 있으면 손이 많이 가는 딸이다. 그걸 또 다 해주는 나도 참 나다.     


 그렇게 적당한 온도를 찾은 티스푼을 들고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열심히 눈꺼풀을 눌러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딱 저 나이 때의 내가 떠올랐다.     


 여중생 시절의 나에게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일본 가서 코 수술하고 싶어.” 그때는 일본의 성형 수술 기술이 좋은지 어떤지도 몰랐다. 그냥 미국은 너무 멀고 우리나라보다 왠지 외국이 더 잘할 것 같은 무지함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성형 수술은 우리나라가 최고인 것 같지만.      


 어릴 때부터 키가 작고 코가 낮은 것이 나의 최대 콤플렉스였다. 코가 조금만 더 높았으면,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요즘은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번호를 정하지만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키로 번호를 정하던 시절이었다. 외모로 줄을 세우던 폭력적인 시기였다. 그때는 그게 특별히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다들 그렇게 해 왔으니. 자연히 특출 나게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이상, 키가 큰 아이들은 키가 큰 아이들끼리 친해지고 작은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끼리 친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고도 키에 대한 불만은 여전했다.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걸 알면서도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친구의 딱 한 마디로 오랜 기간 나를 괴롭혀 오던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신기하게도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아주 사교적이고 똑똑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딱 너만큼만 컸으면 좋겠다.”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작은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다 보니 내 작은 키도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원효 대사의 해골 물에 버금가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친구는 비록 키는 작지만 예쁘고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다. 인기가 많아 친구도 많았다.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던 아이였다. 그 친구에게서 자신의 키에 대한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내 키가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키도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구나. 더 이상 키에 연연하며 살 필요가 없구나. 키에 대한 콤플렉스는 사라졌다. 조금 있으면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을 보면 말 한마디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사실 내가 신체에 콤플렉스를 가졌다면 오른쪽 다리였을 거다. 혈관이 뭉쳐져 붉은 반점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엄마는 한 번도 그걸 보고 ‘흉하다, 큰일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했기 때문에 그것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여름이면 반바지나 치마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녔다. 한창 외모에 예민할 여중생 때 다리에 대한 고민을 조금도 하지 않고 큰 걸 보면 엄마의 대범한 양육이 콤플렉스로 여기지 않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 크고 나니 사람들이 물어보곤 했다. 나도 나이가 들고 그런 궁금함에서 나오는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귀찮아져서 바지를 선호하게 됐다.      


 딸아이는 눈이 안 좋아서 6살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다. 제발 어른들(특히 모르는 할머니들)이 입 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안경을 꼭 써야 하는 건데 어른들은 안쓰럽다는 생각에 “아이고~ 벌써 안경 썼냐~”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안경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작고 보들보들한 아이의 얼굴에 벌써 안경을 씌워야 한다는 것에 나부터 억장이 무너졌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콤플렉스로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나 말을 조심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스쳐 지나가는 잘 모르는 어른들은 한 마디씩 했다. ‘벌써 안경을 썼냐, 왜 썼냐, 불편하겠다’ 등.      


 식탁에서 열심히 쌍꺼풀을 만들던 그녀는 너무나 만족해하며 자신의 쌍꺼풀을 보여줬다. 원래 쌍꺼풀이 생길 기미가 있는 눈이라 조금만 손을 대니 금방 진하게 생겼다. 눈을 감으면 사라질 거라며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습에 웃기기도 하고 언제 저렇게 컸나 싶기도 했다.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어김없이 생겨나는 콤플렉스. 가진 것을 사랑하기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열망하는 것. 그 콤플렉스가 꼬물꼬물 싹이 트려고 할 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게도 만든다. 모든 사람이 연예인처럼 예쁘고 날씬하고 키가 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날이 온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늦어도 몇 년 후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한창 자라나는 어린 영혼들 앞에서는 특히 말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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