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이의 주방에 서면 바보가 된다. 온갖 스마트한 기능이 갖춰진 부엌이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부엌이든 내 주방이 아니면 바로 쩔쩔매게 된다. 가끔 친지나 친구의 주방에 설 일이 있다. 요즘은 어느 집이나 한눈에 보기에는 똑같은 모양의 싱크대와 냉장고, 식탁의 배치지만 그곳에 서서 하염없이 헤매는 일이 생긴다. 마치 길을 잃은 꼬마 같이.
“각 가정의 주방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수납장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자리 잡고 있다.”
감히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유명한 첫 문장을 마음대로 바꾸어 보았다.
주방을 구성하는 요소는 아주 간단하다. 수전과 싱크볼, 가스레인지와 같은 가열 기구, 수납장, 저장용 전자제품들. 만약 내가 다른 집의 주방에 서야 하는 일이 생기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재빨리 훑는다. 그러나 문제는 수납장 안의 것이다. 집집마다 그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주로 주부)의 취향과 기능성을 최대한 고려해 소중히 들어앉아 있는 것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힘들고 민망한 일들의 연속이다.
결혼하기 전 엄마 대신 뭔가를 만들어야 해서 주방에 서면 “엄마! 프라이팬 어디 있어? 큰 접시는? 고춧가루는?” 하며 물어댔다. 그럼 엄마는 “니는 우리 집에 같이 안 사나?” 하며 찾아 주셨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엄마만의 공식으로 수납장이 채워져 있어서 이 문 저 문 열어가며 찾아야 한다.
결혼하고 오랫동안 새댁이었을 때, 식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님 옆에 서서 무언가 도와드리려고 해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국물이 자박자박한 불고기를 담을 만한 옴폭하고 넓은 접시는 어디에, 전 종류를 찍어 먹을 양념간장을 담을 작은 종지는 어디에, 완성된 음식에 반드시 뿌리는 깨는 어디에 있는지 같은 거 말이다. 자주 서지 않는 주방이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일일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일도 괜히 어려웠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밥 먹고 설거지라도 도와주려고 싱크대에 있는 수세미를 별생각 없이 잡고 씻고 있으면 친구가 와서 이야기한다. “그거 싱크볼 닦는 용인데.” “헙! 미안, 다시 할게.” 미리 물어봤으면 되는데 친구는 정리한다고 정신없어 보여 그냥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생긴다. 잘하려다가 민폐 끼치는 유형.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서 설거지하거나 밥상을 차릴 때 똑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그런 것을 보면 남의 주방에 서면 나만 바보가 되는 건 아닌가 보다. 모두가 헤맨다.
나도 센스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데 왜 다른 이의 주방에 서면 엉성해질까?
주방은 집을 이루는 하나의 공간이다. 그저 침실, 거실, 주방, 화장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집의 일부분일 뿐이다. 다른 공간들은 어느 집이든 비슷비슷한 기능과 풍경을 갖는다. 그러나 유독 주방만은 그 주방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을 담은 공간이 된다.
본인만의 규칙으로 주방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살림들을 수납한다. 각종 양념 소스들을 냉장 보관하는 집이 있고 상온 보관하는 집이 있다. 수저를 수저통에 꽂아 놓는 집이 있고 서랍에 숨겨 놓는 집이 있다. 생선구이용 프라이팬과 일반 요리용 프라이팬의 구분은 같이 사는 식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일회용 위생팩과 랩을 사용하려면 어느 서랍에 그것이 들어있을지 찾아내는 게임을 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기준과 규칙으로 변주가 가능한 공간도 드물 것이다.
인터넷 맘 카페나 아고라 같은 커뮤니티에 함부로 냉장고 문이나 싱크대 수납장을 벌컥벌컥 열어젖히는 친지들이나 친구들 때문에 고민이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그러면 그들의 무신경함과 무례함을 성토하는 댓글들로 후끈해진다. 무방비한 자신의 공간에 훅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 이리라.
때로는 정리나 청소가 제대로 안 된 곳도 있어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곳도 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주방에 누군가가 함부로 들어서는 것을 꺼리거나 경계한다. 특히 나는 누군가가 수납장을 확확 열거나 마음대로 벌컥벌컥 냉장고 문을 열면 발가벗긴 기분이 든다. 물론 나도 무언가 필요할 때는 일일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야 하고 대답(허락)을 듣고 찾는다. 묻는 나도 귀찮고 대답해주는 사람도 답답할 노릇이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내 공간을 남이 헤집고 다니는 게 싫은 만큼 나도 타인의 공간에 들어서게 되면 조심하게 된다. 그곳이 익숙해져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때가 되기 전까지는 자연히 눈치껏 해결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물론 예외도 있으니 항의하지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