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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Oct 08. 2021

남궁인 <만약은 없다>

저자: 남궁인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6.07.04.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글이라 그런가. 배가 아팠다. 무슨 의사가 글도 이렇게 잘 쓰냐.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이라는 글감을 무슨 수로 따라가서 읽어온단 말일까. 상상력 뛰어난 소설가들도 이런 글은 못 쓸 거라고 생각한 글들. 이걸 디테일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꾸준함이다. 성실함이 이어져서 남긴 위대함이 이 책에 있었다. 배가 아팠다. 선생님 저도 배가 아픈데, 원인이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아이고 배야.



응급실에서 생기는 누군가의 죽음을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말해야 한다면 그건 좀 잔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면, 의사에게 있어서 환자의 죽음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실패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걸 굳이 단어로 만들어서 엮는 이 의사를 동료 의사들은 뭐라고 바라볼지도 궁금했다. 때론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몇 번은 눈물도 고였다. 안타까운 사연에 내 추억을 조금 얹어보고,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나를 담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내게 있어 누군가의 죽음은 인생의 큰 사건이었는데, 작가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일상이기도 했다. 일상이 연결된 글에 밥숟가락을 얹어보고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연장선이랍시고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작가는 죽음에 죽음을 엮어서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그 글들 사이사이에 자신의 부담을 좀 숨겨놓진 않았을까. 마치 이스터애그처럼, 혹은 티 나지 않는 0.00001그램의 무게만큼 들키지 않는 양을 말이다. 한 문장을 적고, 누군가 그 문장들을 연이어 읽어 내려가면서 당신이 짊어진 무게를 독자들에게 슬쩍 묻히는 건 아닐지 싶었다. 그렇게 묻히고 묻히다 보면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그런 글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2016년도에 나온 책이고, 메르스에 대한 얘기도 실려 있다. 이미 세상은 마스크로 뒤덮였는데 아마도 지금의 응급실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삶에 대한 욕구가 몇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작가가 써 내려간 응급실의 죽음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것이었다. 7인의 작가가 함께 쓴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내에서도 남궁인 작가의 글은 다른 작가들에게도 많이 언급되었다. 누가 봐도 질투를 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은 같은 걸 보고도 다른 걸 찾아내는 사람들을 천재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같은 걸 보지 않는 것을 수재라고 해야 하는 것이겠지. 수재에 사람됨을 얹고 진지함을 또 조금 더 얹은 사람이진 않을까 상상해본다. 마냥 질투만 드는 것이 아니라, 부러움에 존경심이 함께 얹히는 글이었다.


작가가 죽음을 읽어 내려갈 때는 보호자나 본인 외에도 환자의 뼈나 살, 피, 간호사와 119 구급대원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실려있는 것 같다. 죽음을 소재로 쓴 글을 모아놨는데 거기엔 죽음의 곁에 있는 산자들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다. 죽음은 살아 숨 쉬는 사람들 곁에서 대비되어 더 부각되어 보였다. 하지만 이 부각이 튀어나온 건지 들어간 건지는 묘연했다. 삶과 맞닿아있어 엉겨 붙은 죽음들 앞에서 '구분이 간다'는 것과 '어떻게 구분이 간다'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구분은 가는데 어디가 선인지는 분명치는 않았다. 심지어 작가는 그걸 36편이나 모아놨다. 참으로 변태스러운 성실한 일이다. 나는 이 성실함을 의외로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군대 에피소드는 SNS에 돌아다니는 글 가운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었다. 그의 성실함에 이미 몇 번이고 채인 사람으로서 책을 읽어 내려가며 탄성과 눈물을 교차했다. 그런 성실함으로 죽음을 직면한 순간들을 모아 온 이 책을 보면서 온전히 몸으로 이걸 다 이겨냈을 거라고 생각하자 닮고 싶어졌다. 나도 온전히 나의 삶을 받아내려서 글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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